[서울파이낸스 박지민 기자] "막걸리나 소주 같은 우리 전통주야말로 국내 쌀 소비량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거든요. 그런데 단순히 제품 자체의 농산물 함량 기준으로만 따져서 청탁금지법상 선물 상한액을 정했으니, 답답한 노릇이죠"

최근 만난 전통주업체 관계자는 암담한 표정으로 하소연했다. 이전 같으면 한창 대목이었을 설 명절을 앞두고 전통주 업계는 시름에 가득 차 있다. 지난달 정부가 내놓은 부정청탁금지법 시행령 개정안 때문이다.

정부는 부정청탁금지법으로 농축수산물 소비가 위축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농축수산물이나 농축수산물 가공품 선물 상한액을 기존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높였다. 다만, 농축수산물 가공품의 경우 농축수산물 원료가 50%를 넘는 제품에 대해서만 적용키로 했다.

설 대목을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 청탁금지법 개정안이 발표되자 관련 업계는 큰 혼란에 빠졌다. '원료가 50%를 넘어야 한다'는 기준이 모호하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전통주 업계는 특히 그랬다. 전통주 특성상 누룩과 쌀로 발효해 만든 높은 도수의 술 원액에 정제수를 넣어 알코올 도수를 맞춰야 한다. 발효 원액의 알코올 도수는 40~50도에 이른다. 저도주가 대세인 요즘 주류 시장에서 40~50도 술이 팔릴 리 만무하니, 물을 넣어 알코올 도수를 낮추는 작업이 필수다. 그러니 농축수산물 원료 50% 이상이란 기준에 맞추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설 대목을 앞두고 원료 함량 논란으로 혼선이 빚어진 가운데, 정부의 답답한 대응은 영세 전통주업체들의 마음을 더욱 타들어가게 만들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국민권익위원회가 서로 유권해석을 떠넘기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농식품부는 농축수산물 가공품 선물 상한액에 대해 문의하는 업체들에게 "국민권익위원회에 유권해석을 요구하라"고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을 넘겨받은 권익위는 "소관부처가 관련 법령에 따라 최초 재료의 함량이 50%를 넘는 것으로 인정하면 선물에 포함된다고 해석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관련 업계에선 "사실상 다시 농식품부로 떠넘긴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국무조정실과 농식품부, 해양수산부 등 관련 부처는 지난 9일 뒤늦게 후속 회의를 열고 "홍삼 농축액 제품, 전통주 등에 대해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결정했다"며 "전통주 등 주류에 대해서는 도수를 맞추기 위해 투입하는 물과 그 물을 뺀 나머지 원재료를 비교해 '원재료 비율'을 판단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통상 연휴 일주일 전까지가 명절 선물세트 대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정부의 늑장대응은 큰 아쉬움을 남긴다. 특히 관련 업체들에게 후속 기준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상태여서 전통주 업계는 이번 명절에 청탁금지법 개정의 혜택을 거의 누리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전통주 업계 관계자는 "이번 설은 이미 대목이 지난 데다 업체들뿐만 아니라 소비자까지 혼란을 겪어 전통주 선물을 아예 기피한 것 같다"면서 "맥주 등 외국에서 들어온 술은 규제 완화 속에서 갈수록 소비가 늘고 있는데, 우리쌀로 만드는 전통주는 점점 외면받고 있는 것 같아 더욱 속상하다"고 말했다.

물론 일관된 기준이 필요하다는 정부의 입장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업계의 현실을 등한시한 제도를 내놓고 '사후약방문'식의 조치를 덧대는 과오를 매번 반복해서는 안 될 일이다. 잊혀져 가는 우리술의 전통을 묵묵히 이어가는 이들의 깊은 한숨이 그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