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칼럼] 달라질 수밖에 없는 명절 풍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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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홍승희 기자]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는 명절 연휴가 달갑지 않다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는 보도가 나왔다. 명절이 더 이상 민족 고유의 명절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릴 수 없게 단지 연례적 휴가의 성격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미 주변에서도 명절 귀향을 걱정하는 이들, 대가족의 모임이 부담스러운 이들, 차례문화 자체를 편치 않게 여기는 이들 등이 많고 아예 대가족의 만남 대신 핵가족만의 해외여행 등이 성행하기 시작한지 제법 됐다. 여행지에서 차례를 지낸다는 소리를 들은 지도 꽤 됐다.

젊은 세대는 고사하고 중장년 세대에게서조차 제사며 차례를 아들들이 계승한다는 의식도 희미해졌지만 노년 세대들은 여전히 아들들이 이런 전통을 따르지 않는 현실에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는다. 그래서 집안마다 갈등이 적잖고 명절 가족만남을 더 꺼리게 만들기도 한다.

젊어서는 명절에 대가족이 만나는 자체를 거부한다기보다 개인적인 사정, 예를 들어 미취업 상태인 젊은 청년들이나 소위 말하는 결혼적령기의 미혼남녀들은 집안의 지나친 관심이 부담스러워서 만남을 피하고자 한다. 취업 재수, 삼수가 다반사인 요즘 미취업 청년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어쩌다 만나는 대가족 구성원들의 관심대상이 되고나면 월등히 증폭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실질적으로는 조혼과 만혼이 뒤섞이며 결혼적령기라는 개념 자체가 흐려진 젊은 세대에게 노년 세대들은 여전히 과거의 잣대를 들이대며 결혼을 재촉하거나 간섭하고 나선다. 젊은 세대는 당연히 그런 노년세대와의 접촉이 불편해진다.

뿐만 아니라 대가족이 모여도 함께 즐길 놀이문화가 없다. 과거의 전통 놀이는 소실됐고 젊은 세대의 놀이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돌아가다보니 노년세대가 공유하기도 어렵지만 기본적으로 웹문화 자체가 ‘혼자놀기’에 적합한 구조여서 한자리에 모여 각자 노는 모양새가 만들어질 뿐 만남의 의미가 희미하다.

또한 단위 가족당 소수의 자녀만을 두다보니 대가족이 모여도 또래끼리 어울릴 기회가 없다. 청소년들로서는 어른들 속에 혼자 끼어 어색하게 자리 지키기나 해야 하는 명절 만남이 지루하고 힘들다.

그나마 어른들 문화가 재미라도 있으면 좋지만 대개는 남자들끼리 술 마시고 고스톱이나 치고 여자들은 따로 둘러앉아 먹고 마시는 뒤치다꺼리에 빠지거나 그다지 친숙할 것 없는 동서끼리 공소한 정보들이나 나누고 만다. 세대가 함께 어울릴 문화가 사라진 현장에서 대가족이 만나는 것은 참 힘들 수밖에 없다.

여기에 정치 사회문제, 혹은 종교문제 등에 대해 누군가 말 한마디 꺼냈다가는 서로 상처만 받고 끝나는 경우가 흔하다. 남성 중심의 대가족 만남에서 여성들, 특히 며느리들은 소외감 뿐만 아니라 노예노동을 한다는 피해의식까지 갖기 쉽다. 실제로 적잖은 노년의 부모들에게 며느리는 여전히 집안일을 해야 하는 존재로 인식 속에 자리잡고 있어서 단순히 며느리들의 피해의식이라고만 말하기도 어렵다.

필자의 일을 도와주는 한 여성은 시집과 친정이 20리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시어머니 생전엔 명절에 내려가도 친정 한번 들릴 겨를이 없었다고 털어놨다. 그런 시어머니 곁에는 늘 손위 시누이가 자신의 시집 대신 친정에 와서 시어머니 노릇을 대신하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딸은 내 곁에, 며느리도 내 곁에 거느리려는 시어머니 욕심을 거스르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시어머니 사후에 다시는 명절에 시집에 가지 않게 됐다고 했다.

사회가 변화하는 데는 이렇게 윗사람, 아랫사람 할 것 없이 저마다 한 역할씩을 하고 있다.

가뜩이나 사회적 변화가 워낙 급격히 이루어지다보니 세대간 의식의 괴리가 너무 커서 만나도 대화할 공통주제가 없다시피 하는 판에 한쪽에 일방적 희생을 요구하는 가족내 갑질이 벌어지다보면 결국 그 공동체는 더 이상 존속이 어려워지기 마련이다.

이런 변화가 어디 가족 간에만 이루어질까. 사회 조직 가운데 그래도 가장 강고한 조직, 전통이 가장 오래 존속하는 조직이 가족관계임에도 이런 변화가 불가피하다면 당연히 우리 사회 전반 역시 그보다 앞서 일어나는 변화를 자연스럽게 수용해야만 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갑질하는 고용주 혹은 상사, 갑질하는 원청업체 문제는 줄어들 줄 모른다.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빠르게 사라져야 할 사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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