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흙수저 취준생과 神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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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윤은식 기자] 우리 헌법은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고 규정하면서 누구든지 사회적 신분에 의해 차별받는 것을 금지한다.

그런데 우리사회의 현실은 개인의 능력과 노력보다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부(富)에 따라 사회적 신분과 계급이 나뉜다. 말 그대로 "느그 아부지 모하시노"로 대변되는 '수저계급론'이 일반화됐다. 기회 평등이 부의 장벽에 막힌 것이다.

부모의 직업도 스펙이 되는 현실에서 지난해 '정유라 이대 부정입학 사건'으로 수많은 청년은 박탈감에 빠졌다. "돈도 실력이다. 네 부모를 원망해"라는 정 씨의 말에 세상은 분노했지만 누구도 이 현실을 온전히 부정하지는 못했다.

그로부터 1년 후 공공기업 채용비리 소식에 취업준비생들은 또다시 깊은 절망감에 빠졌다.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공공기관은 '신의 아이들'을 골라 채용했다.

꼴찌가 1등이 되고 아버지가 아들 면접을 보는 현대판 '황표정사(黃標政事)'에 '배경'도 없고, '돈'도 없고, '연줄'도 없는 흙수저 취업준비생들은 기회마저 박탈당했다.

많은 이가 분노하지만 사실 '신의 직장'·'철밥통 직장'을 만든 우리 사회도 큰 책임이 있다. 소수 특권층을 제외한 대다수의 부모는 자신이 살아온 경험으로 우리사회가 학연·지연·혈연 위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부모 입장에선 자신의 자녀만큼은 좋은 학벌과 의사, 판사, 변호사 등 이른바 '사(士)'자가 들어가는 직업을 가지길 바란다. 옳고 그름을 떠나 이런 직업이 자녀가 살아갈 가장 좋은 조건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채용비리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우리사회는 분노하고 그때마다 채용비리 근절에 대한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부모로서 많이 가지지 못한 자신을 원망하고 자녀들에게 미안해했다.

그래서 부모들은 부정적인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내 자식만큼은 신의 직장, 철밥통 직장에 들어가기 바랐다. 이런 이유로 우리 사회는 가진 자가 직업을 세습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그 과정에서 '수저계급론'이 등장하고 '신의 아이들'이 생겨났다.

지금 이 시간, 노량진과 도서관에서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나가는 청년들이 있다. 이들이 평등한 조건에서 공정하게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정부와 정치권은 각고의 노력을 해주기 바란다. 이것이 문재인 정부가 외치는 적폐청산의 시작일 것이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지금 사회와 맞지 않을 수 있다. 그래도 99%의 땀을 흘리는 자가 1%의 조건을 가진 자를 이기는 지극히 당연한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하루빨리 만들어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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