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면접관, 점수 깎고 올리고"…은행권 채용비리 백태
"아빠가 면접관, 점수 깎고 올리고"…은행권 채용비리 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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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채용비리 22건 확인…"절차 미흡 사례도 다수" 

[서울파이낸스 김희정 기자] A은행은 서류·실무면접에서 최하점을 받은 사외이사의 지인을 전형공고에 없던 '글로벌 우대'를 이유로 통과시켰다. B은행은 공개채용 필기시험에서 임직원 자녀에게 가산점 15%를 부여했다. C은행은 지원자들의 가족관계 정보를 미리 면접위원들에게 전달했다. 면접장에는 전 정치인의 자녀 D가 등장했다. 손쉽게 면접을 통과한 D는 가뿐히 '신의 직장'의 일원이 됐다. 

금융감독원은 26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은행권 채용비리 현장점검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우리은행 채용비리 의혹이 제기되자 은행권은 채용시스템에 대한 자체점검을 실시했다. 이후 금감원은 자체점검의 적정성 점검 및 채용업무 적정성에 대한 현장점검을 진행했다. KB국민·신한·KEB하나·NH농협 등 국내 11개 은행을 대상으로 했다. 채용비리 수사가 진행중인 우리은행, 산업·기업·수출입은행(공공기관 채용실태 점검대상), 씨티·SC제일은행(외국계)은 제외했다. 

점검 결과 채용비리 정황 22건이 발견됐다. 유형별로는 △채용 청탁에 따른 특혜채용(9건) △특정대학 출신을 합격시키기 위한 면접점수 조작(7건) △채용 전형의 불공정한 운영(6건) 등 순을 보였다. 금감원은 이같은 내용을 검찰에 통보할 예정이다.

채용절차 운영상의 미흡사례도 적발됐다. △블라인드 채용 제도 비(非)운영(3개 은행) △임직원 자녀 등에 대한 채용혜택 부여(2개 은행) △채용평가 기준 불명확(4개 은행) △전문계약직 채용에 대한 내부통제 미흡(2개 은행) 등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채용비리 정황은 수사기관에 이첩하고 은행에 제도 개선을 지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날 금감원이 공개한 은행권 채용비리 유형은 '천태만상'이다. 특히 이해관계자의 채용 청탁에 따라 최종합격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우대요건 신설, 면접점수 조정 등 여러 특혜채용이 이뤄졌다. D은행 최고경영진의 친인척은 서류면접에서는 840명 중 813등, 실무면접에서는 300명 중 273등을 기록해 합격 가능성이 턱없이 낮았다. 그런데 임직원 면접에서 최고 등급을 받아 120명 중 4등으로 최종 합격했다. D은행은 지원자 중 사외이사·임직원·거래처의 자녀·지인 명단을 별도 관리했다.  

특정인을 뽑기위해 합격자 점수를 임의로 바꾼 사례도 있었다. F은행은 지원자가 불합격 대상인데도 소위 명문대학 출신이라는 이유로 임원면접 점수를 올려 합격 처리했다. 명문대학 지원자를 뽑기 위해 합격대상인 수도권 등 다른 대학 출신 지원자는 점수를 모두 깎아 탈락시켰다. 

G은행은 아예 인사 담당임원이 자녀의 채용면접에 임원면접관으로 들어갔다. 인사 담당임원의 자녀는 해당 면접에서 고득점으로 합격했다. 계열사 사장·현직 지점장 자녀의 점수가 합격 기준에 미달하면 전형에도 없는 간이 면접을 따로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임직원의 자녀들은 정성평가 최고 점수를 얻었고 결국 최종 합격했다.

권창우 금감원 일반은행국장은 "부정 합격자들에 대한 채용 취소 등 조치는 감독당국이 아닌 은행들 스스로 판단해야할 문제"라면서도 "검찰 수사를 통해 형법상 업무방해가 확정되면 이 직원들에 대해 은행들도 심각하게 고민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금감원은 전국은행연합회를 중심으로 채용절차 관련 모범 규준을 마련할 계획이다. 공공기관 채용비리 전수조사 후 이달 말 발표될 정부의 제도개선 방안도 모범 규준에 반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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