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전경련 허창수 회장, 발로 뛰어라
[기자수첩] 전경련 허창수 회장, 발로 뛰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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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윤은식 기자] 전국경제인연합회 위세는 대단했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이 장관 면전에 대고 쓴소리를 내 뱉을 정도로 막강했다.

허 회장이 전경련 회장으로 취임하던 2011년 당시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정부 정책 결정이 국가 장래를 걱정하는 순수하고 분명한 원칙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정치권 감세 철회 방향에 일갈을 날렸다. 반값 등록금 정책을 두고는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경제단체가 정부와 정치권을 향해 손가락질을 한 것이다.

그만큼 정치·경제를 아우르며 존재감을 과시했던 전경련이 지금은 개밥에 도토리 신세다. 전경련이 최순실 게이트 정경유착 사건에 핵심 창구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새 정부 적폐청산 기조에 해체까지 몰리며 경제단체로서 기능이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았다.

그러면서 정부 주요 행사 등에 초대받지 못하며 과거 영광을 뒤로 한 채 존재감이 흐려지고 있다.

허 회장은 지난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첫 경제인과 만남 자리에도 전경련 회장이 아닌 GS그룹 회장 자격으로 참석했다. 문대인 대통령 첫 미국 순방길에는 전경련 회장 배지를 달고 참석했으나 문재인 대통령 옆자리는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과 4대 그룹 총수들 차지였다.

당시 보도된 사진 한 장이 이를 그대로 말하고 있다. 문 대통령과 박용만 회장, 4대 그룹 총수들이 한데 모여 담소를 하고 있는 뒷 편으로 허 회장이 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모습이 촬영됐다.

무술년 새해가 시작됐지만 여전히 전경련은 정부와 정치권에 눈 밖에 나 있는 모습이다. 전경련은 청와대 신년회에 초대받지 못했다. 허 회장은 전경련 회장이 아닌 GS그룹 회장 자격으로도 초청받지 못했다.

허 회장은 경제계 최대 행사인 신년인사회에 초청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일각은 허 회장이 청와대 신년회 초청도 받지 못한 상황에서 경제계 인사회에 참석하는 것이 달갑지만은 않았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허 회장은 최순실 게이트로 전경련이 적폐 대상으로 몰리자 혁신을 다짐했다. 혁신의 하나로 50년간 지켜온 전경련이란 간판을 바꾸려 했으나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가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이마저도 못하고 있다.

그동안 재벌기업을 등에 업고 무서울 것 없었던 전경련이 지금은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박 회장은 최순실 게이트로 유명무실해진 전경련을 대신해 경제대표단체 수장으로서 동분서주하며 경제계와 노동계의 소통을 끌어내며 노사 간 상생 협력의 길을 개척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대한상의가 정부의 상생 협력 정책 기조에 맞추는 것인지, 아닌지 그 속내는 알 수 없지만 어찌 됐든 지금 대한상의는 대중으로부터 호평을 받으며 기업만을 대변하는 경제단체라는 색깔을 탈피하고 있는 모습이다.

허 회장도 올해 신년사에서 "하나 된 경제주체"를 언급했다. 하지만 전경련이 그동안 경제1단체를 자부하며 최저임금 인상, 주5일제 근무, 통상임금 확대 등 노·사 간 갈등만 부추기지 않았나 싶다.

허 회장이 혁신하겠다고는 했지만 무슨 혁신을 했는지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전경련이 진정 혁신을 통해 새롭게 거듭나려 한다면 적어도 헤어진 옛 연인을 다시 만나기 위해 수백 수천 번씩 연락하고 찾아가는 사람의 심정으로 대중에게 다가가는 적극적인 노력을 해봤으면 한다.

이것이 허 회장이 말하는 혁신이자 변화일 수도 있다. 이런 노력이라도 없으면 대중에게 전경련은 재벌기업 아바타, 최순실·박근혜 전 대통령의 자금 조달창구로 기억될 뿐이다.

허 회장은 혁신을 통해 변화하겠다고 말만 하지 말고, 혁신안을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아 변화할 수 없다는 핑계도 대지 말고, 직접 발로 뛰며 무너진 신뢰와 경제단체의 기능을 회복하려는 노력을 보여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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