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유통업계 결산] 롯데·신세계, 바람 잘 날 없었다
[2017 유통업계 결산] 롯데·신세계, 바람 잘 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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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김태희 기자] 올해 유통대기업들은 내외부의 환경에 휘둘리며 이리저리 치이는 한해를 보냈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배치에 따른 중국의 경제적 보복과 정부의 유통산업 규제 등 큼직한 이슈들을 짚어본다.

◇ 롯데 50돌…경사와 흉사 공존

▲ 지난 4월3일 서울 송파구 잠실 롯데월드타워에서 열린 롯데그룹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신동빈 회장이 '뉴롯데(NEW LOTTE)'라고 쓰인 전구에 불을 켜고 있다. (사진=롯데그룹)

2017년 롯데그룹은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창업주 신격호 총괄회장의 30년 숙원 사업인 123층 월드타워도 완공했다. 축배를 들기에도 시간이 모자랄 법한데 웃을 수 없는 한해를 보냈다.

위기는 롯데 소유 경북 성주군 초전면 성주골프장을 사드 부지로 제공하면서 시작됐다. 중국 전역에서 일어난 반한감정이 분풀이처럼 롯데를 향해 쏟아졌고 '한국관광 금지령'으로 인해 백화점, 마트, 면세점 등 주요 유통채널 모두 타격을 입었다.

사드 직격탄에도 아랑곳 않고 롯데는 신동빈 회장의 '원리더' 체제를 강화하는데 주력했다.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통해 컨트롤타워 구실을 하던 정책본부를 경영혁신실로 축소시키고, △유통 △식품 △화학 △호텔·서비스 등 4개 사업부문(BU)을 신설했다. 사회공헌팀과 준법경영위원회도 꾸려 투명 경영과 사회적 책임에 힘을 쏟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4월3일에는 창립 50주년을 맞아 '생애주기 가치 창조자(Lifetime Value Creator)'라는 새 비전을 선포했다. 고객 생애주기에 맞춰 최고의 가치를 제공하겠다는 뜻이다. 이를 기념하는 '롯데50년사'도 펴냈다. 1967년 롯데제과로 시작해 2017년 매출 규모 92조원의 대기업이 되기까지 역사를 담았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숙원사업인 월드타워(123층)도 완공했다. 1987년 서울 송파구 잠실을 사업지로 선정하고, 30년이 걸렸다. 투자 규모는 4조원. 투입된 인력은 500만명에 달한다. 반면 신격호 총괄회장은 전 계열사 사내이사에서 이름을 내리며 1세대 경영에 마침표를 찍었다.

10월에는 롯데쇼핑, 롯데제과, 롯데칠성음료, 롯데푸드 4개 계열사를 분할·합병한 롯데지주가 탄생했다. 신동빈 회장과 황각규 경영혁신실장(사장)이 롯데지주 공동대표를 맡았다. 복잡한 순환출자 고리도 50개에서 13개로 줄었다. 신 회장은 롯데지주 지분 13.0%를 소유하며, 형인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과 2년간 치러왔던 경영권 분쟁까지 마무리했다.

하지만 신 회장이 '경영비리 의혹'과 '최순실 뇌물공여' 등 2개 재판을 받으면서 롯데의 분위기는 뒤숭숭할 수밖에 없었다. 검찰은 횡령·배임 혐의 10년과 뇌물공여 혐의 4년을 합쳐 14년을 구형했다. 신 회장뿐 아니라 신격호, 신동주, 신영자, 서미경 등 총수일가 대부분 경영비리 의혹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문제는 신 회장이 집행유예를 받지 못하고 징역을 선고 받을 경우다. 그룹 2인자로 불리는 황각규 롯데지주 공동대표, 소진세 롯데사회공헌위원회 위원장도 함께 재판정에 섰다. 신 회장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는 전문경영인이 없는 만큼 한국은 물론 일본 롯데의 경영권 문제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다.

재계는 22일 1심 선고공판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롯데가 항소할 것으로 예상한다. 3~5년 시간을 끌며 결국 대법원까지 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 탈 중국, 동남아·인도 진출 러시

▲ 지난 9월 몽골 울란바토르 호룰로에 문을 연 이마트 점포(몽골 2호점)가 현지 소비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사진=이마트)

한국 정부가 사드 배치를 결정하자 중국 정부는 한국 기업들을 대상으로 경제 보복에 나섰다. 중국 현지 롯데마트는 99개 점포 중 87개가 영업을 중단했다. 중국 당국이 소방법 위반으로 3월부터 '한달 영업정지' 처분을 내리고 이를 10개월 동안 풀지 않았다.

롯데쇼핑은 지난 3월 3600억원과 8월 3400억원을 합쳐 7000억원을 중국 롯데마트에 쏟아 부었다. 손해를 보더라도 중국 내 사업을 철수하지 않겠다는 신 회장 의지가 반영된 긴급 수혈이었다.

그러나 9월 롯데쇼핑은 중국에서 운영 중인 112개 점포(마트 99개·슈퍼 13개) 매각을 결정했다. 문제는 연내 마무리 지으려했던 매각이 지연되고 있다는 것이다. 2차 차입금이 내년 1월 모두 소진되면 매월 200억원씩 운영자금을 추가 투입해야 한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도 지난 6월 중국에서 이마트를 철수시키기로 결정했다. 이마트는 1997년 상하이 취양점을 열었고, 2010년까지 점포 수를 26개로 늘렸다. 하지만 적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2011년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정 부회장은 남아 있는 6개 점포 모두 순차적으로 매각하겠다고 밝혔다.

중국에서 사업 철수를 결정한 한국 기업들은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진출에 힘을 쏟기 시작했다.

롯데는 인도네시아 재계 2위 살림그룹과 합작법인 '인도롯데'를 설립하고, 10월 온라인쇼핑몰 '아이롯데'(ilotte)를 선보였다. 12월에는 인도네시아의 합성수지(아크릴로니트릴부타디엔스티렌, ABS) 생산업체를 인수했다. 현재까지 롯데는 인도네시아에 총 12억달러를 투자해 유통, 화학, 관광 등의 사업을 하고 있다. 12개 계열사가 진출했고, 연간 매출은 1조8000억원에 달한다.

신 회장은 베트남에서도 투자를 늘리고 있다. 주력 사업은 유통, 관광, 부동산 등이다. 3300억원을 투자해 2020년 하노이시 떠이호구 신도시 상업지구에 '롯데몰 하노이'를 세우고, 백화점과 마트, 영화관 등을 운영할 계획이다. 9월에는 베트남 신용카드회사 테크콤파이낸스 100% 지분 인수 계약을 했다. 롯데면세점은 11월 베트남 다낭공항에 점포를 열었고, 시내면세점 진출도 검토 중이다.

신세계는 할랄 문화권 공략을 위해 말레이시아 진출을 결정했다. 말레이시아에 이마트존을 만들고 신세계푸드를 내세워 식품업체 '마미 더블 데커'(마미)와 50%씩 출자한 신세계마미를 설립했다. 말레이시아 외에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등 동남아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이마트는 2019년 베트남 호치민에 2호점을 열 예정이다. 캄보디아에도 현지 재벌기업인 로열그룹과 업무협약을 하고 2019년 1분기 점포를 열 계획이다.

◇ 공항면세점 특허권 줄줄이…흥행은 실패

▲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의 면세점 구역. (사진=인천공항공사)

올해는 공항면세점 특허권이 줄줄이 나왔다.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T2) 개항과 사드 여파가 겹쳤기 때문이다. 입찰 기업들은 과거와 달리 경쟁보다 사업 수익성에 초점을 맞춰 신중하게 접근했다.

인천공항 T2 면세점 사업자로 호텔신라(향수·화장품), 호텔롯데(주류·담배·포장식품), 신세계디에프(패션·잡화)가 선정됐다. 신세계디에프가 획득한 DF3 구역은 6번 유찰돼 수의계약으로 이어졌다. 중소·중견기업 중에선 에스엠면세점, 엔타스듀티프리, 시티플러스가 특허권을 따냈다.

제주국제공항 출국장면세점을 운영하던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는 오는 31일 사업권을 반납한다. 사드 여파로 월 매출이 20억원 밑으로 떨어지면서 높은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게 된 탓이다. 갤러리아면세점이 빠진 자리에는 신라면세점이 들어선다. 같은 이유로 공실이 된 양양공항 면세점은 동무가 사업자로 선정됐다.

롯데면세점 코엑스점은 31일 특허권이 만료됨에 따라 재승인 심사를 받았지만 단독 입찰이어서 무난하게 사업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다만 운영자가 롯데디에프글로벌에서 호텔롯데로 바뀌었다. 롯데는 현재 3개 법인으로 나뉜 국내 면세점 사업권을 호텔롯데로 모으고 있다.

◇ 다이소·이케아 등 전문점도 규제 움직임

▲ 경기 고양시 덕양구에 위치한 이케아 고양점에서 한 여성이 가구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김태희 기자)

복합쇼핑몰과 전문점에 대한 시각이 다양해졌다. 복합쇼핑몰이 일자리 창출과 지역 상권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측면과 골목상권 소상공인을 죽인다는 시각이 엇갈린다. 같은 맥락에서 다이소와 이케아 등 전문점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상반기 국회에선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무더기로 발의됐다. 개정안 중에는 복합쇼핑몰과 아웃렛도 대형마트처럼 의무휴업일이 생겨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을 월 2회에서 4회로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신세계는 부천 원미구 상동 부천영상문화단지에 복합쇼핑몰을 건설하려다 백화점으로 몸집을 줄였지만, 결국 인천 부평구의 반대로 무산됐다. 백화점이 들어서는 곳은 행정구역상 부천시지만 반경 3km 영향을 받는 곳은 부평구여서다. 대규모 점포를 열 때 인접 지방자치단체의 동의까지 얻어야 한다는 개정안이 상정된 상태다.

다이소와 헬스앤드뷰티(H&B)숍, 이케아 등 전문점들을 복합쇼핑몰로 규제해야한다는 움직임도 일었다. 공정위는 지난 6~7월 CJ올리브영네트웍스와 롯데하이마트, 다이소아성산업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 해당 기업들은 무작위로 점포를 늘리며 특정 품목의 지역 시장점유율을 독점하고 있다.

이케아는 가구 전문점으로 분류돼 복합쇼핑몰 규제를 받지 않는다. 이케아 광명점의 경우 지난해 700만명이 방문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 올해는 경기 고양시 덕양구에 국내 2호점을 오픈했다. 반경 4km 이내에는 스타필드 고양이 있다.

정용진 부회장은 스타필드 고양 개장식에 참석해 "정부의 복합쇼핑몰(의무휴업일 지정) 정책을 따르겠다. 그러나 이케아는 왜 안 쉬나"라고 말해 역차별 논란을 일으켰다. 이케아는 가구전문점이지만 가구뿐 아니라 부엌용품과 유아용품도 팔고 있다. 레스토랑도 운영한다.

◇ 주 35시간 근무…약인가? 독인가?

▲ 민주노총 마트산업노조가 지난 12월12일 서울 중구 소공로 신세계백화점 본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김태희 기자)

신세계그룹은 내년부터 16개 계열사 임직원의 근로시간을 주 40시간에서 35시간으로 줄인다고 밝혔다.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시대적 흐름을 선도해 '저녁이 있는 삶'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주 40시간은 기본일 뿐 50~60시간까지 일하는 곳도 아직 많다. '노동시간이 너무 많은 나라'가 한국의 모습이다.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근로시간을 줄여야 한다는데 동의하고 있고 이를 신세계가 앞장서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첫 길을 걷는 만큼 어려움도 따를 것이다. 처음부터 완벽할 수 없다. 구성원들과 소통하고 맞춰가면서 제도를 수정해 롤 모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마트 근로자들은 이에 반발했다. 민주노총 마트산업노조 이마트지부는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16.4%)을 무력화하기 위한 꼼수라고 주장했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결국 지불할 총임금을 줄였다는 것이다.

이마트지부는 근로시간 단축으로 업무강도가 높아지는 만큼 인력충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신세계그룹 계열사와 연관된 많은 협력·용역업체 직원들이 2차 피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한다.

전수찬 이마트지부 위원장은 "최저임금 1만원 시대가 됐을 때 이마트 근로자는 월 183만원 수준의 임금에 머물게 된다. 고액 연봉 근로자들은 근로시간이 줄면 '저녁이 있는 삶'이 생기겠지만 최저임금을 받는 마트 노동자들은 해당이 안 된다"고 설명했다. 전 위원장은 "더욱이 최근 2년간 이마트는 2400명 가까이 인력을 줄였다. 인력충원 없이 근로시간만 줄이는 것은 결국 인건비 절감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신세계 계열사들은 직접 고용을 줄이기 시작했다. 저임금 노동자 대부분을 인력파견업체를 통해 고용하고 있다. 질 나쁜 일자리를 양산하고 있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또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이 사회 전반의 목소리라고 말하면서 협력·용역업체 근로자들의 노동시간이 단축되는 것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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