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가난해지는 국민의 노후 걱정
[홍승희 칼럼] 가난해지는 국민의 노후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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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홍승희 기자] 은퇴 후 생활비가 월 평균 224만원이라는 신한은행의 조사결과가 나왔다. 빅 데이터를 토대로 본 예상 노후 생활비는 192만원으로 나왔지만 실제 생활비는 이를 웃돌았다.

이런 차이는 지금 노후 자금을 저축하고 있는 젊은 층들에겐 예상보다 더 많은 저축이 필요하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지금 직장인들의 74%는 노후를 대비해 저축하지만 그 액수는 26만원에 불과해 근로소득의 10%에도 못 미친다.

그런가 하면 전혀 저축을 하지 않는다는 직장인도 27%에 달한다. 저축할 돈이 없다거나 금리가 낮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달고 있다. 금리가 낮아서 저축을 안 한다는 것은 모은다는 개념이 빠져 있어서 노후를 대비하기에는 꽤 안일한 답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저축할 돈이 없다는 답에 있다. 쓰기에 바빠서 저축할 돈이 없을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학비 때문에 사회 초년생의 절반 가까이가 평균 3천만 원의 빚을 지고 인생을 시작하고 있다는 현실과 연관 지어 생각해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요즘은 취업도 재수, 삼수가 흔하다보니 평균 취업준비기간이 1.1년 더 해지고 그동안 들어가는 비용이 384만원에 달한다. 부모 집에서 먹고 자면서 별도로 쓰는 비용이다. 절반은 부모가 부담하지만 취업준비생 스스로도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또 다른 빚을 더해 분담한다.

그렇게 빚을 짊어지고 취업을 해봐도 평균 초임 급여가 2백만 원에도 못 미치는 다수의 청년 직장인들에게 그 빚을 갚아나가며 저축까지 할 여력은 당연히 없을 것이다. 급여의 절반을 빚 갚기에 쏟아 부어도 최소한 3년 이상은 빚더미를 지고 살아야 할 터다.

그러니 그 빚을 다 갚기 전에 저축을 한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데 빚을 다 갚을 때 쯤이면 결혼하고 아이를 길러야 할 시기에 이른다. 아이를 기르는 것이 그 어느 시절보다 돈 많이 들어가는 이즈음이니 맞벌이도 하면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버둥댄다.

그런데 아이 낳고 한 1년 쉬고 나면 재취업을 해도 급여가 전만 못하다. 3세 미만 자녀를 맡길 곳이 없어서 아예 한 3년 쉬고 나면 급여는 더 하락해 경력단절 없는 동료들보다 30% 이상 깎인다. 그래서 맞벌이 해봐도 외벌이 가구보다 겨우 30% 쯤 더 버는 데 그친다.

아이 교육비 채우기에도 급급하니 맞벌이 한다고 저축 여력이 더 늘어나지도 못한다. 경력 단절을 겪지 않아도 30, 40대 직장 여성들의 평균 급여는 274만원으로 노후 생활비 수준을 겨우 넘는 정도다. 위 아래로 돈 들어갈 일 많은 나이의 소득이 그토록 숨 막히는 상황이니 인생 전체가 그저 겨우 겨우 버텨나가는 수준을 벗어나기 어렵다.

물론 같은 연령대 남성들의 평균 급여는 상대적으로 훨씬 여유가 있지만 여유롭게 저축할 상황은 못 된다. 빡빡하게 가계 운영을 해나가며 저축하는 액수가 26만원이다.

그런데 맞벌이 가구의 가계소득은 지난해보다 2% 정도 감소했다고 한다. 늘어도 시원찮을 상황에서 이러니 앞으로 그들 세대의 노후 또한 걱정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현재의 노년 은퇴자들 대다수는 아예 저축은 꿈도 못 꿔보고 하루하루를 아슬아슬하게 버텨내며 살아남은 세대다. 게다가 위로는 부모 모시고 아래로는 자식들 교육에 몽땅 쏟아 부으며 자신의 노후는 대비할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의 30, 40대는 상대적으로 짐이 덜어졌을 성 싶지만 실상은 영 아니다. 예전처럼 부모를 직접 모시지는 않지만 이래저래 신경 쓰고 돈 쓰는 일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게다가 기를 자녀수가 줄었다지만 살인적인 사교육 광풍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더욱이 맞벌이 부부의 경우 아이를 학원 뺑뺑이 돌리기라도 하지 않으면 방과 후의 일탈을 감독할 방법이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사교육비에 뭉텅 쏟아 붓는다.

이런 판국에 소득이 느는 대신 줄어든다면 국민의 가난은 갈수록 절망을 낳을 뿐이다. 지금 어마어마한 가계부채가 여전히 몸통을 불려가고 있는 판국이니 우리사회는 가난의 대물림이 더 심화될 수밖에 없다.

이런 악순환은 사회적 철학을 바꾸지 않고는 끊기 어렵다. 사회복지를 단순히 표 더 얻기 위한 포퓰리즘으로 매도하는 정치인들은 가난의 대물림을 눈앞에 두고 절망하는 가난한 대다수 국민들을 외면할 뿐만 아니라 이 나라의 미래를 가로막는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은 무슨 생산물 몇 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창조적인 이들이 벌이는 몇 개의 일을 통해 얻은 수익으로 모든 국민이 함께 먹고 사는 길을 모색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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