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강제성 없는 신체접촉'이라는 김준기式 회피
[기자수첩] '강제성 없는 신체접촉'이라는 김준기式 회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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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윤은식 기자] 사회부 시절, 담당라인 경찰서를 돌며 가장 많이 접했던 사건은 술로 인한 크고 작은 폭력사건이었다. 그중에는 다른 테이블에 앉아 술을 마시던 여자 손님의 신체를 만져 경찰에 조사받으러 온 경우도 있었다.

조사를 받으러 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강제로 만지지 않았다', '상대가 가만히 있었다', '상대도 호감이 있어서 가만히 있는 것으로 알았다'는 등 변명을 늘어놓기 바빴다. 대부분은 쌍방 합의로 끝내는 경우가 많았으나 더러는 검찰에 송치돼 구약식처분을 받아 벌금을 내거나 법원에 기소돼 재판을 받는 일도 있었다.

반대로 돈을 노린 일명 '꽃뱀'의 교묘한 수단에 빠져 돈을 빼앗길 뻔한 순진한(?)한 남성들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어찌 됐든 성(性)과 관련된 사건은 강간과 같은 강력범죄를 제외하곤 피해를 당했다는 쪽이나 무죄를 주장하는 가해자 쪽의 진실공방이 뜨겁다. 진실은 두 당사자만이 알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최근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이 회장실 여비서를 성추행 혐의로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김 회장은 상습적으로 강제추행한 혐의로 서울수서경찰서에 피소됐다. 김 회장 측은 신체접촉은 있었지만 강제성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오히려 이 여비서가 돈을 요구하기 위해 동영상을 촬영하고 100억+알파를 요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 회장이 여비서의 신체를 만진 것은 인정하고 있으니 김 회장의 이런 행동이 강압적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아니면 또 다른 진실이 숨어 있는지는 경찰수사에서 드러날 것이다.

김 회장은 성 추문 사건이 일어난 지 이틀 만에 개인의 문제로 회사에 짐이 돼선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면서 그룹 회장직과 계열사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다. 험난한 구조조정을 마무리하면서 기사회생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던 김 회장이 한순간에 무너진 것이다. 성추행 파문이 커지자 동부그룹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는 것을 염려해 이뤄진 조처라는 것이 재계의 시각이다. 재계의 마지막 창업 1세대 총수였던 그가 창업 48년 만에 불명예 퇴진하게 된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씁쓸한 뒷맛은 쉬이 가시지 않는다.

퇴진 결단을 내렸지만 김 회장은 등기이사도 아닌 비등기 이사여서 이 부분도 질타를 받고 있다. 비등기 이사는 사업상 권한은 있지만 법적책임은 지지 않는다. 그동안 시민사회에서 지적해왔던 재벌 총수의 책임 회피 사례와 다르지 않다.

어쨌든 이번 성추문 사건의 진실은 김 회장과 여비서만 알고 있을 테지만, 이 사건의 사실 관계를 떠나 김 회장이 재계 원로로서의 책임감 있는 모습을 국민 앞에서 보여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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