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서울 명동은 '더위 없는' 거리…화장품·의류매장 '개문냉방'
[르포] 서울 명동은 '더위 없는' 거리…화장품·의류매장 '개문냉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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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일 서울 중구 명동거리에서 '개문냉방'을 하고 있는 이니스프리(위쪽)와 프리스비 매장. (사진=김태희 기자)

300여곳 중 4곳만 문닫고 장사…"불법이지만 괜찮아"
작년부터 '경고' 차원 단속…과태료 없어 실효성 의문

[서울파이낸스 김태희 기자] "와, 시원해!"

기상청이 31도 무더위를 예고했지만 거리를 걷는 내내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더위 없는 거리' 서울 중구 명동의 민낯이었다.

22일 오후 2시 명동거리를 찾았다. 왁자지껄한 거리에는 여러 매장 직원들이 호객행위를 하기 위해 나와 있었다. 그들 뒤로 매장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선선한 바람의 정체를 찾았다. 이른바 '개문냉방(문 열고 냉방)'이었다.

을지로입구에서 명동성당까지 길을 따라 올라왔을 때 현관문을 닫고 영업을 하는 경우는 단 한 곳도 없었다. 무더위 속에서 시청역부터 걸어온 탓에 흥건했던 땀이 다 식을 정도였다. 내리쬐는 햇빛도 문제 없었다.

다시 지하철 4호선 명동역으로 이어지는 거리로 들어섰다. 한 곳이라도 문을 닫고 장사를 하는 가게가 있지 않을까 찾아보기 싶어져서다. 그러나 역시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명동거리에는 빈폴, 지오지아, 스파오, 티니위니, 랜드로바, 미쏘, 게스, 네이처리퍼블릭, 이니스프리, 에뛰드하우스, 더페이스샵, 토니모리, 홀리카홀리카, 미샤, 잇츠스킨, 바닐라코, 에스쁘아, 라네즈, 로얄스킨, 올마스크스토리, 어퓨, 아리따움, 클럽클리오 등 화장품이나 옷을 파는 매장들이 즐비하다. 대부분 문을 활짝 연 상태였다. 호객행위를 하지 않는 애플 전문점 프리스비도 예외는 아니었다.

화장품 매장들은 거의 자동문이었는데, 문을 연 채 전력을 차단했다. 직원들이 수동으로 전원을 켜지 않는 이상 문은 닫히지 않는다. 같은 브랜드라도 매장마다 다른 사례도 있었다. 아모레퍼시픽 계열사 이니스프리는 명동에 있는 6개 매장 중 명동역점만 문을 닫고 영업을 했다.

▲ 지난 9일 서울 중구 명동거리에 위치한 ABC 마트의 모습. 빨간 표시된 부분이 모두 문이 열린 곳으로 에어컨 바람이 나가는 방향에 따라 현수막이 펄럭이고 있다. (사진=김태희 기자)

전력 낭비가 가장 심각한 곳은 신발 편집매장이었다. 폴더, ABC마트, 레스모아 등은 매장 면적이 넓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이 신발을 볼 수 있도록 전면을 개방한 채 영업을 했다. 매장 입구 위에 붙인 현수막이 에어컨 바람 때문에 거리를 향해 펄럭였다.

300여개 매장이 자리한 명동거리에서 개문냉방을 하지 않는 곳은 4곳뿐이었다.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와 뉴발란스, 의류 브랜드 에잇세컨즈와 자라가 그 주인공.

뉴발란스 명동점 직원인 이인영(24·남)씨는 "문을 열어놓는 게 불법이기 때문에 닫아 놓고 있는데 확실히 매출에 차이가 난다"며 "우리도 겨울에는 난방을 안 하고 문을 여는 경우가 많은데, 춥지만 매출을 늘리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겨울에 매장 문을 여는 건 불법이 아니다.

나이키 매장에서도 같은 대답을 했다. 여름철 문을 연 게 불법이라는 것이다. 나이키 매장 직원 최윤서(28·여)씨는  "내부 규정이 따로 있지 않지만 불법이기 때문에 문을 닫는 것"이라며 "문을 닫거나 여는데 따라 손님이 들어오는 횟수가 1.5배 정도 차이가 난다"고 귀띔했다.

명동의 매장을 다녀본 결과 대부분 개문냉방이 불법임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문냉방이 당연시하게 된 것은 완화된 단속 규정 탓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6년 전부터 개문냉방을 단속하고 있다. 올해 개문냉방 규제기간은 7월3일부터 9월8일까지. 2015년까지는 산자부가 단속 공고를 내고 1차 적발되면 경고장, 2차 때는 50만원 과태료를 부과했다. 이후 상습 적발된 경우 2회 100만원, 3회 200만원, 4회 이상 300만원을 내야 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개문냉방에 대해 과태료를 부과하지 않고 계도하는 것으로 규정이 바뀌었다. 단속 역시 산자부가 절전현황을 검토하고 공고를 내야 시작된다.

명동거리 한 매장 직원은 "평일 낮 시간 중구청 직원들이 가끔 단속을 나오긴 한다. '문을 닫으라'는 말만하고 가기 때문에 그 때만 닫고 어느 한 가게가 다시 문을 열기 시작하면 다들 따라한다"고 말했다.

▲ 22일 서울 중구 명동 나이키 직영점의 유리문이 닫혀 있다. (사진=김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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