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기획] 외국계 '싹쓸이' 배당…국내 증권사 '천수답 경영' 언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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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도 새는 '바가지'…해외지점 57곳 당기순손실 450만 달러

▲ 사진=서울파이낸스DB

[서울파이낸스 김희정 기자] 지난 9일 UBS증권 서울지점은 이익잉여금의 일부인 750억원을 본사(UBS Securities Pte. Ltd.)에 송금했다. 2016회계연도 기준 국내에서 벌어들인 390억원보다 더 많은 돈을 본사로 보낸 것이다. UBS증권과 같은 지점형태의 외국계 증권사는 국내에서 벌어들인 돈을 본점에 송금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챙긴다. 일반 상장기업의 배당과 비슷한 개념이다.

지난 6월 노무라증권 역시 171억원을 지분 100%를 소유한 네덜란드 노무라아시아홀딩스에 전달했다. 맥쿼리증권도 지난 3월 27억원을 영국 맥쿼리인터내셔널인베스트먼트에 일괄 송금했다. 이외에 크레디트스위스증권, 시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 골드만삭스, BNP파리바증권 등 외국계 증권사들도 국내에서 번 돈을 해외로 송금하기 바빴다.

1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들에 견줘 자기자본이나 직원수가 훨씩 작은 외국계 증권사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순이익을 얻어 본사에 거액을 송금하고 있다. 국내 증권사들이 전통적인 수입인 브로커리지 수익(중개 수수료)에 의존하고 있는 데 반해, 인수합병(M&A)이나 자기자본투자(PI) 등 투자은행(IB) 부분에서 전문성을 나타내며 큰돈을 벌면서 실속을 챙기고 있는 셈이다.

외국계 증권사들은 자본시장 역사가 훨씬 오래된 영국과 미국 등에서 축척된 노하우와 선진 시스템을 바탕으로 글로벌 네트워크 경쟁력 면에서 국내 증권사들을 압도하고 있다.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이 지난해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상반기 국내 47건의 M&A가 진행됐지만 이 중 국내 증권사가 주관한 것은 3건에 불과했다"며 "골드만삭스, 시티뱅크, 모간스탠리, 삼정회계법인 등 외국계 금융사와 회계법인이 국내 M&A를 쥐락펴락하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한 바 있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의 브로커리지 수익 비중은 2005년 74.4%에서 2015년 56.7% 수준으로 낮아졌지만 여전히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최근 국내 증권사 수익 중 브로커리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50% 미만으로 하락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개(브로커리지)에만 열을 올리는 '천수답식' 영업을 끝내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여전히 유효하다.

국내 증권사들의 해외 영업도 신통치 않긴 마찬가지다. 금융감독원 자료를 보면 국내 증권사의 해외지점 57곳은 지난해 450만 달러(약 45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새로운 시장 진출을 위해 해외로 눈을 돌렸지만 선진 글로벌 시장보다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에서 한국과 똑같은 브로커리지 업무에만 치중하고 있다. 우리보다 역사가 짧은 신흥시장에서 조차 단순 중개업자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금융당국이 발 벗고 나서 국내 증권사들을 초대형 IB로 유도하고 나섰다. 증권사들이 모험자본 공급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서 안방인 국내 시장에서조차 외국계 증권사들의 들러리를 서고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결과다. 한 금투업계 관계자는 "튼튼한 IB의 기반이 되는 중요한 두 가지 요인은 '충분한 자기자본'과 '전문적인 네트워크 구축'"이라며 "이 토대가 마련 돼야 다양한 투자기록(트랙 레코드)이 쌓여 신규 자원이 다시 추가되는 선순환의 고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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