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홍승희 기자] 요즘 소득세와 법인세 인상 문제를 두고 정치권의 논란이 뜨겁다. 물론 국회 통과까지의 과정이 결코 순탄치는 않을 것이다. 내가 낼 세금 올린다는 데 좋아할 사람은 없다. 오죽하면 예수가 살던 당시 사람들은 세리는 상종 못할 종자 취급까지 했을까.

멀리 갈 것도 없이 조선시대에도 조세문제는 5백년간 내내 많은 기록을 남길 정도로 말썽이 많았다. 그 때문에 여러 차례 조세개혁을 시도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적폐를 쌓아갔다. 그러니 그토록 여러 차례 개혁이 시도됐을 것이다.

물론 조선시대 조세제도에는 큰 맹점이 있다. 기본적으로 많은 재산을 소유한 양반 사대부들이 각종 세금 납부대상에서 제외되고 먹고살기 힘든 상민들만이 조세 부담을 지게 되어 그 부담을 견디지 못한 가난한 상민들이 천민으로 신분 하락하는 사태도 벌어지곤 했다.

신분제가 엄존하던 중세나 근세에는 속된 표현대로 '계급이 깡패'라 조세부담을 지는 상민들로서는 피할 수만 있으면 피하고자 하는 게 현대인들로서는 충분히 납득할 만한 상황이기도 했다. 그야말로 의무만 있고 권리는 없는 게 세금이었으니까.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세금은 다르다. 납세자들은 세금을 내는 대가로 안전을 보장받고 더 나아가 어떤 상황에서도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는 보장, 즉 복지혜택을 누릴 권리를 갖는다. 그런 의무와 복지의 관계가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 사회를 우리는 후진국이라 부른다.

우리는 지난 40여 년간 후진국을 탈피하기 위해 몸부림쳐왔다. 그동안은 물론 대부분의 국민들이 기본적인 복지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고 국민안전을 국가보위 혹은 정권보위만을 위한 논리로 바꿔버림으로써 국민들의 신뢰를 잃기도 했다. 세금은 부패한 정권과 그 밑에 기생하며 비리를 저지르는 일부 공무원들의 주머닛돈으로 변화해 납세자 국민들로 하여금 세금의 순기능을 믿지 못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어쨌든 공무원 세계는 과거에 비하면 상당히 맑아졌다. 여전히 부정을 저지르는 공무원들이 소수 남아있기는 하다. 그래서 종종 감사에 걸려들고 처벌받는 사례도 드러난다. 그러나 그 정도는 완전히 사라지기 힘들고, 그래서 사회적 감시망을 좀 더 촘촘히 짜서 줄여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

이제 세금은 상당히 정직하게 국민 생활을 지키고 돕기 위해 사용되는 편이다. 그리고 국민들은 그런 세금의 사용에 관해 납세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할 근거도 차츰 갖춰져 가고 있다.

국가보위는 국민안전의 범주에 속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 동안 국민안전의 거의 대부분을 국가보위로만 보던 패러다임이 이제 빠르게 바뀌어가고 있다. 국민들이 납세자로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험을 들 때는 내가 내고 내가 혜택을 받는다지만 연금보험 같은 경우가 아니라면 다치거나 죽지 않으면, 약속된 병에 걸리지 않으면 그냥 돈만 낼 뿐이다. 즉, 건강한 사람이 낸 보험료로 아픈 사람에게 더 많은 혜택을 보게 되는 구조인 것이다.

세금을 낼 때는 다수가 내고 다수가 혜택을 받는 구조지만 돈을 더 잘 버는 사람이 더 많은 세금을 내고 다수가 같은 혜택을 받는 시스템이다. 물론 같은 세율이 적용돼도 돈 더 버는 사람이 더 많은 세금을 내게 된다.

그러나 미래사회는 적은 수의 사람이 일해서 많은 수의 사람을 먹여 살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올 만큼 기계화, 인공지능시스템 등으로 인해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다. 물론 새로운 직업도 생겨나긴 하겠지만.

게다가 교육기간은 더 길어지고 노인 비중은 더 커질 것이다. 따라서 복지혜택이 확대되지 않으면 국가의 존립자체가 위협받을 수도 있다. 그런 미래사회를 대비하며 국가는 복지혜택을 늘려가야 하고 그런 만큼 돈 많이 버는 기업과 고소득자들은 더 많은 세금을 내는 구조로 갈 수밖에 없다.

그것은 이제야 겨우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서기 시작한 우리 사회의 바람직한 모습이다. 또한 복지국가로 갈 수밖에 없는 미래세계를 대비해 가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물론 정부는 세금탈루나 누수를 제대로 감시할 의무가 있고 납세자들 또한 감시자로서의 권리인 동시에 의무를 져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