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사진=셀트리온)

"창립 15주년…글로벌 '톱 10' 바이오기업으로 성장"

[서울파이낸스 김현경 기자] "이렇게 힘든 사업인지 몰랐습니다. 수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끊임없는 연구개발과 투자, 그리고 불굴의 도전정신으로 허들을 통과해 여기까지 왔습니다. 세계 굴지의 다국적 제약사들도 예견하지 못했던 '항체 바이오시밀러'라는 신시장을 만들어냈고, 이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유리한 고지에 올라서게 됐습니다. 셀트리온은 이제 세계로 나갑니다."

올해 셀트리온 창립 15주년을 맞는 서정진 회장은 이렇게 술회했다.

1999년 대우그룹 해체로 실업자가 된 서 회장은 2000년 새해 사업구상을 하고 작은 회사를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창업 멤버들과 인천 연수구청 벤처센터에서 '넥솔'을 설립한 뒤 다양한 사업을 타진하던 그는 생명공학에서 가능성을 발견하고 2002년 셀트리온을 설립했다. B형 간염바이러스를 발견한 바루크 블럼버그 박사와 토마스 메리건 스탠퍼드대학교 에이즈연구소장을 만나 생명공학에 눈을 뜬 것이다.

하지만 미지 영역을 개척하면서 많은 시련과 역경이 찾아왔다. 세계 수준 생산 설비를 갖춘 공장을 건설하고 바이오의약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갔다. 제도조차 마련되지 않은 열악한 환경, 부족한 기술력이 앞길을 가로막았다. 바이오산업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 오해와 불신 속에 '사기꾼'이라는 오명을 입기도 했다. 특히 2004년은 서 회장에게 시련의 한 해였다. 2002년 창업과 동시에 의욕적으로 준비했던 에이즈 백신 프로젝트 임상 3상 시험이 모두 실패하면서 생산 계획도 무산됐기 때문이다.

출범 이후 최대 위기였지만 서 회장은 1·2공장 건설을 위한 대규모 투자를 발표하면서 위기 순간에 오히려 승부수를 뒀다. 의약품 개발에 먼저 뛰어드는 제약회사와 달리 바이오 의약품 위탁 생산(CMO) 사업을 통해 선진 기술을 익힌다는 전략도 수립했다. 이런 역발상 전략이 실현될 것이라고 믿은 전문가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그 꿈은 현실로 이뤄졌다. 셀트리온은 다음 해 6월 바이오 의약품을 생산·판매하는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과 CMO 계약을 체결하는 데 성공했다.

"이래서는 주인이 못 될 것 같다." 내 것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기 위해 CMO 사업을 중단했다. 창업 때부터 세계 시장을 염두에 뒀던 서 회장은 2010년부터 2011년까지 항체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램시마 글로벌 임상을 추진했다. 생명공학 분야에서 낮은 국가 지명도와 기업 인지도, 까다로운 임상 환자 모집 등 수많은 난제가 있었다. 하지만 불굴의 근성으로 전 세계 의료진과 규제기관을 설득해 임상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셀트리온에 붙던 물음표는 느낌표가 됐다. 2012년 7월 세계 최초로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램시마 판매 허가를 결정했다. 식약처 판매허가는 세계 각국 바이오시밀러 도화선이 됐고, 2013년 램시마가 유럽의약품청(EMA) 허가까지 이뤄냈다. 램시마는 지난해 누적 수출 1조원을 돌파했고, 유럽 시장 점유율은 40%를 넘어섰다. 또한 현재 트룩시마(백혈병 치료제)도 미국에서 허가를 신청했으며, 허쥬마(유방암 치료제)는 유럽시장에 허가 신청을 한 상태다.

회사는 램시마와 트룩시마, 허쥬마로 이어지는 제품군과 다양한 신약 개발을 통해 글로벌 '톱 10' 바이오기업으로 성장하는 비전을 실현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서 회장은 올해를 "셀트리온의 고속 성장이 시작되는 중요한 해"라며 "더 큰 성장을 위해 창업 당시의 초심을 잃지 않고, 도전을 멈추지 않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