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김현경 기자] 석 달 전 소비자로부터 기사 제보를 받았다. 꽤 오랜 기간 취재를 했지만 덮어야 했다.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종의 직업병이랄수도 있는 '팩트 노이로제'도 한 몫 했다.

사연은 이렇다. 소비자 A씨는 온라인을 통해 화장품 기업 에이블씨엔씨 브랜드숍 어퓨의 틴트(액상 입술 메이크업 제품)를 구매했다. 제품을 받은 그는 곰팡이로 추정되는 이물질을 확인했다. 회사 측에 항의하자 그들은 화학 실험을 명목으로 틴트를 수거해갔다. A씨는 실험 조작을 우려했지만 '절대 그런 일은 없다'는 회사 측 말을 믿었다.

제품을 넘겨준 것이 실수였다. 며칠 동안 연락이 없는 회사에 A씨가 먼저 문의를 했으나 '이상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 A씨는 증거가 담긴 실험 결과서를 요구했다. 외부 공개를 할 수 없다는 회사와 승강이 끝에 결과서를 받아들었다. 내용을 문서로 확인한 그는 분노했다. 실험은 A씨가 결과서를 요구했던 당일 이뤄졌기 때문이다.

애초 언급했던 화학 실험 역시 이뤄지지 않았다. 그물망에 내용물을 통과한 게 전부였다. 회사는 그물망에 이물이 걸리지 않아 제품에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마저도 사진이 남아 있지 않아 사실 확인이 어려웠다. 증거물이 없는 것이 아쉬웠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역시 소비자가 맨눈으로 확인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는 제조판매업자에 법적 제재를 가할 수 없다고 했다. 식약처에 실험 의뢰를 할 경우 문제 원인을 밝힐 수 있었다. 하지만 현물이 없으므로 진행하기 어려웠다.

A씨는 협력 업체에 대한 회사 '갑질 의혹'도 제기했다. 틴트를 수거해 실험을 한 곳은 어퓨지만, 실험했다고 문서를 작성해온 곳은 제조사인 B업체였기 때문이다. A씨는 갑을 관계를 의심했다. A씨가 공개한 녹취 파일에 따르면 B업체 직원은 에이블씨엔씨의 C씨가 말해준 것을 토대로 실험 결과서를 작성했다.

B 제조사는 외관으로 내용물에 이물이 있는지 빛을 비춰보는 검사만 진행했다. 실제 B 제조사 해당 직원과의 통화에서도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B 제조사는 어퓨가 진행한 실험이 끝난 후 이를 확인하는 작업만 했다. 제조판매업자는 판매 행위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게 돼 있다. 하지만 실험 여부를 다른 업체에 허위로 작성하도록 지시한 것은 판매관리 의무를 회피한 행동이다.

압력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정황상 추측할 뿐이다. 의문이 남는다. 그들이 정말 떳떳했다면 왜 문서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았을까. 실험결과서 공개를 미룬 이유는 무엇일까. 식약처와 같은 전문 기관에 실험 의뢰를 하지 않았을까. 실험 과정을 입증하는 시각적 증거물을 남겨두지 않았을까.

에이블씨엔씨가 홈페이지에 명시한 윤리경영은 어디로 간 것일까. 회사는 고객 불만 사항은 신속하고 공정하게 처리한다고 했으며, 거래 업체에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부당행위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고객과 거래업체에 대한 책임과 의무' 조항이 자꾸만 눈에 거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