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김희정 기자] 최근 금융권 안팎은 예금보험공사의 성과연봉제 백지화 가능성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성과연봉제 도입 당시 보여줬던 곽범국 사장의 '밀어붙이기'식 정책 추진이 다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지난해 4월29일 예보는 성과주의 문화 확산을 위한 성과제도 개편에 '노사가 합의했다'고 밝혔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반광현 당시 예보 노조위원장이 단독으로 사측의 합의서에 서명해 허울뿐인 노사 합의가 이뤄졌던 것이다. 곽 사장과 반 전 노조위원장의 합의 이틀 전 노조 총회에서는 62.7%의 반대로 성과연봉제 도입을 부결시켰다.

반 전 노조위원장은 성과연봉제 합의가 통과된 날 바로 성명서를 발표하고 "조합원 여러분께 무릎 꿇고 사죄한다"면서 "절차상 정당성을 정면으로 위반했다"고 스스로 시인했다. 금융공공기관 중 최초로 노사합의 된 예보의 성과연봉제는 그렇게 당사자인 임직원들의 의사는 철저하게 배제된 채 진행됐고 반 전 위원장은 얼마 안가 자취를 감췄다.

곽 사장의 밀어붙이기식 정책 추진이 박근혜 정권에서는 정부의 주요 정책을 수행하는 데 있어 선도적인 역할을 해낸 '모범사례'로 부각됐다. 박근혜 정부는 9개 금융공공기관장 중 유일하게 곽 사장을 청와대로 불러 2015년 임금피크제에 이어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과정에 대해 발표를 시켰다. '신묘한' 재주로 노사합의를 이끌어낸 곽 사장의 노고를 치하하는 자리였던 셈이다.

그런데 국정농단 사건으로 박근혜 정권이 몰락하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예보는 올해부터 본격 시행할 예정이던 성과연봉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한다고 밝혔고 기류는 180도 바뀌었다. 현 예보 노조는 당시 합의의 진정성을 문제 삼으며 성과연봉제 도입을 재검토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문제는 명목뿐인 합의도 법적인 효력을 갖는다는 점이다. 예보 측은 노조의 성과연봉제 재검토에 대해 "성과연봉제와 관련한 정부정책이 변경될 경우 새로운 규정을 반영하겠다"면서도 "합법적인 방식으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는 기존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임직원들의 반발을 불러온 성과연봉제가 최소한의 동의 절차도 거치지 않고 밀실에서 불쑥 만들어져 나온데 대한 설명은 일언반구도 없었다. 곽 사장의 이런 불도저식 일방통행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기습 배치 등 전 정부의 졸속 협상들을 떠올리게 한다면 표현이 과한 걸까.

이 같은 상황에서 곽 사장은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을 추진한다고 노조에 또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근로자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예보가 발 빠르게 움직인 것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똑같이 가이드라인이 아직 나오지 않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서두르면서 성과연봉제 전면 폐기나 재협상에는 미온적인 모습을 보이는 등 앞뒤가 맞지 않는 행보는 비판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기획재정위원회 수석전문위원 출신으로 예보 사장 자리를 꿰찬 곽 사장이 물갈이 대상으로 지목되는 상황이다 보니 새 정부 코드 맞추기에 급급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일부에서는 곽 사장이 이달 중순에 나올 기획재정부의 공공기관 경영평가를 의식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경영평가에서 최하인 E(아주미흡)등급을 받은 기관장은 해임 대상이다.

박근혜 정부 초기에 경영평가를 MB맨(이명박 정부 인사) 솎아내기에 적극 활용했다는 점을 들어 곽 사장의 자리 지키기가 녹록치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 안팎의 분위기다. 때문에 곽 사장이 경영평가가 끝날 때까지는 성과연봉제를 유지시켜 끌어 모을 수 있는 점수는 다 받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경영평가에서 성과연봉제 관련 점수는 전체의 3%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곽 사장의 모범생 모드가 해도 해도 너무하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