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일자리 늘려라"…몸집 줄이던 은행 '난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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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化·점포 축소 일반직 채용 감소
'비정규직 제로시대' 기조엔 적극 화답

[서울파이낸스 정초원 기자] 문재인 정부가 일자리 정책에 의욕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은행권도 인력 운용 문제를 두고 적잖은 고민에 빠졌다.

새 정부가 선언한 '비정규직 제로(0)시대'와 관련해서는 이미 주요 은행 대부분이 일찌감치 정규직 전환을 선행해온 상황이라 큰 부담은 없을 전망이다. 다만 달라진 금융환경 탓에 대다수 은행들이 신규 인력 채용에는 소극적인 분위기라, 정부의 일자리 창출 정책에 적극적으로 화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내 주요 은행 가운데 NH농협은행이 200명의 6급직원 공개채용 절차를 진행한 것을 제외하고는 대다수 은행이 일반직군 신입행원을 모집하지 않았다.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이 상반기 공개채용을 진행하긴 했지만 일반직군이 아닌 창구직원(텔러)에 한정된 모집이었으며, KB국민은행, KEB하나은행, IBK기업은행 등 다른 주요 은행들도 하반기 채용만을 계획 중이다.

지난해만 보더라도 6개 시중은행의 일반직 신규채용은 전년에 비해 절반 이상 줄어든 1200여명에 그쳤다. 올해 2월 금융연구원이 발표한 '2016년 금융인력 기초통계분석'을 보면 은행권의 올해 채용 예상 인원은 333명에 불과하다.

은행원들의 설 자리가 줄어들고 있는 것은 신입 채용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희망퇴직을 통한 감원 한파가 매해 꾸준히 이어지는 등 은행산업 전반적으로 직원수를 줄여 인건비를 감소하려는 추세가 확연하다.

▲ 사진=서울파이낸스DB

금융감독원 집계에 따르면 국내 은행권의 임직원 수는 2015년 말 11만7023명에서 작년 말 11만4775명으로 2248명이 줄었다. 몇년 내에 전체 은행권 임직원수가 외환위기 수준인 10만명 이하로 내려앉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하반기 채용에서 작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신규채용을 하겠지만, 변화하는 금융환경을 고려했을 때 채용 인원을 큰폭으로 늘리는 추세는 아니다"라면서도 "과거에도 정부의 정책 기조에 맞춰 금융권 일자리가 일정 부분 늘어난 전례가 있는 만큼 분위기를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들이 인력구조조정을 통해 기존 직원들을 내보내고, 새 인력을 뽑는 데 소극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배경으로는 '금융의 디지털화'가 꼽힌다. 은행권의 해묵은 난제였던 '항아리형 인력구조'를 정리해 생산성을 높이려는 의도도 있지만, 당장 온라인·모바일을 통한 비대면 거래가 눈에 띄게 늘어남에 따라 현장 일손이 감소하고 있다는 점도 큰 원인이다.

실제로 은행들은 기존의 점포 네트워크를 예전과 같은 규모로 유지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국내은행의 총 점포수(해외 포함)는 지난 2014년 6556개에서 2015년 말 7445개로 늘었다가 지난해 말에는 다시 7280개까지 감소했다. 올해도 주요 시중은행들이 폐점할 점포수가 수백개에 달할 것으로 예상돼, 내년에는 이 숫자가 7000개 아래로 떨어질 전망이다.

한편 새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대해서는 은행권의 부담이 적은 편이다. 주요 시중은행 대부분이 이미 비정규직을 대규모로 정규직 전환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각사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으로 KB국민은행은 1295명, 신한은행은 781명, 우리은행은 769명, KEB하나은행은 520명의 기간제 근로자를 보유하고 있다. 1만명 이상의 전체 직원수를 감안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더욱이 남은 계약직 상당수가 변호사, 세무사, 회계사 등 전문직이라, 정부가 지적하는 저임금 비정규직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게 은행들의 설명이다.

여기에 몇몇 은행들은 정규직 비중을 늘리겠다는 뜻을 밝히며 '비정규직 제로시대' 기조에 화답하는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신한은행은 비정규직 일부를 연내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했으며, 한국씨티은행도 무기계약직(준정규직) 300여명을 정규직 전환하기로 결정했다. 그간 창구 담당 무기계약직 3000여명을 정규직화하는 방안을 검토해온 IBK기업은행의 경우도 논의에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타행에 비해 비정규직 비중이 높은 NH농협은행도 농협중앙회 차원에서 비정규직 현황을 점검하는 중이다. NH농협은행의 비정규직 숫자는 2979명으로, 전체 직원의 5분의 1 가량을 차지한다. 이와 관련 NH농협은행 관계자는 "산전후 대체직이나 명예퇴직 재채용 인력, 농산물 판매 창구직 등을 모두 더했을 때 나온 숫자"라며 "비정규직 구성이 다른 은행과 다소 달라 숫자상으로만 비교하는 것은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인력 문제는 NH농협은행 단독으로 진행할 수 없는 부분이라, 중앙회 차원에서 전계열사의 현황을 파악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은행권의 이런 움직임에 더불어민주당도 환영의 뜻을 내비치고 있다.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최근 현안 브리핑에서 "새 정부의 일자리 정책에 부응하는 시중은행의 정규직 전환 추진을 환영한다"며 "청년실업과 일자리 문제 해결의 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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