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밑빠진 독' 대우조선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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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정초원기자] "대우조선해양의 관리가 부실했지만, 세계 1위의 경쟁력만큼은 간직하고 유지시켜야 합니다. 2018년이 되면 조선업 사이클에 변화가 올 겁니다."(임종룡 금융위원장)

대우조선해양에 '추가지원 불가'라는 입장을 고수해왔던 정부가 수조원대 신규자금 지원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그간 정부는 대우조선해양에 추가 자금지원을 하지 않고 자체 경쟁력으로 살아남도록 하겠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최근 유동성 문제로 대우조선해양이 막다른 골목에 갇히자, 회사의 숨통을 틔우기 위해서는 신규지원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달라진 정부의 분위기에 정치권을 포함한 여론은 일찌감치 부정적인 기류를 형성한 상태다. 이미 1년6개월 전 4조2000억원의 자금지원 결정을 기점으로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는 비판이 이어진 데 이어, 기업 하나를 살리기 위한 혈세를 또 한번 투입하는 것은 무모한 결정이라는 반응에 무게가 실린다. 앞서 채권단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파산의 길에 들어선 한진해운의 사례까지 고려하면, 형평성 차원에서도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그간 금융당국이 조선업에 대해 비교적 장밋빛 미래를 그려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같은 '방향 선회'가 그리 갑작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실제로 지난해 말 임 위원장은 "해운업은 아무리 근거를 찾아보려고 해도 언제 나아질 것이라는 보장이 없고, 치킨게임이 언제 끝날지 확신이 없었다"고 언급한 반면, 조선업에 대해서는 "빅 사이클은 아니더라도 스몰사이클 정도의 변화가 올 때까지 버텨야 한다"고 분석했다.

특히 대우조선해양을 당장 포기할 경우 60조원에 가까운 경제 손실을 감수해야 하지만, 사이클 산업인 조선업의 주기를 참고 기다릴 경우 그만큼의 보상이 돌아올 것이라는 게 금융당국의 논리다. 만약 대우조선해양이 파산해 연구개발(R&D) 인력까지 경쟁국으로 뺏기면, 국내 조선산업은 순식간에 와해될 것이라는 판단도 작용했을 것이다.

문제는 '장밋빛 전망'이 현실화되지 못했을 때다. 채권단이 지난 2015년 대우조선해양 지원안을 결의했을 때도 경영정상화에 대한 나름의 장밋빛 전망은 전제된 상황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당시의 희망찬 전망은 공수표가 됐다. 금융당국의 표현대로라면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수주절벽'이 이어진 탓에, 대우조선해양은 정상화는커녕 적자와 유동성 위기의 늪에 빠졌다.

다시 말해 이번에 대우조선해양의 숨통을 틔운다고 해도 가까운 미래에 또 다시 '예상치 못한' 상황이 닥치지 않으리라고 장담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이미 수조원대 지원금을 투입한 데 이어 두번째 지원을 고려하는 상황이라, 최악의 경우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대우조선해양 문제를 차기 정부로 넘기고 상대적으로 '쉬운 길'을 택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점도 생각해볼만한 대목이다. 금융당국 내에서도 '살리느냐 죽이느냐', '원칙을 뒤집느냐, 차기 정부로 미루느냐'의 갈림길 속에서 적잖은 고민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대우조선해양을 이대로 방치한다면 사실상 파산은 시간문제이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이 끝까지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도 있다. 금융당국으로서는 쉽지 않은 딜레마를 떠안은 가운데, 국민과 이해관계자를 설득할 수 있을 현실적인 전망과 처방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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