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서지연기자] 우체국보험 관계자는 최근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 지급 여부를 묻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법대로 하겠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지난해 10월 대법원은 우체국보험과 소비자의 소송에서 소멸시효를 인정해 보험금 지급 의무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에 따라 우체국보험도 자살보험금을 지급할 법적 근거가 사라졌다는 논리다.

오랜 기간 보험업계의 논란거리였던 자살보험금 사태가 보험사들의 꼬리 내리기로 일단락 됐다. 대법원의 판결을 따르겠다던 생명보험사 빅3(삼성·한화·교보)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위로금이나 자살예방기금 형태의 대책을 내놨다. 논란은 여전하지만.

의아한 것은 '울며 겨자먹기식'이라도 대책을 내놓은 민영생보사들과 달리 나라가 운영하는 '국영 보험사'인 우체국보험이 현재까지도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은 지급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체국보험에 남아있는 소멸시효가 지난 미지급 자살보험금은 총 359억원으로, 계약 건수만 1040건에 달한다. 이는 민영 중소형보험사의 미지급 자살보험금의 몇 배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물론 대법원의 판결로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 지급을 강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없다. 때문에 민영보험사처럼 금융당국의 제재를 받지 않는 우체국보험으로서는 그 필요성이나 부담을 덜 느꼈을 수도 있다. 우체국보험은 미래창조과학부 산하로, 금융당국의 관리감독을 받지 않는다.

우체국보험 관계자도 "우체국보험은 국영 유사보험사이기 때문에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결정할 수 없다"며 "현재까지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은 지급 검토 계획이 없다"고 못 박았다. 국영보험이기 때문에 더더욱 '법대로'를 고수할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배임' 논란을 염두에 둔 것으로 들린다.

하지만 민영보험사들이라고 이같은 우려가 없었겠는가. 원칙만 고집할 게 아니라 '소비자와의 신뢰' 측면에서 다시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다. 생보 빅3를 제외한 대부분의 보험사들은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기 전에 '소비자와의 신뢰'를 지키기 위해 법적 강제성이 없는데도 자살보험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자살보험금 지급은 법적인 문제이기 전에 소비자와의 신뢰 차원에서 봐야한다는 판단에서 내린 결단이었다.

그런데도 민영보험사들의 이같은 결정과 달리 국영보험인 우체국보험은 버티고 있다. 솔선수범은 커녕 민영보험보다 더한 이기적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우체국보험의 이같은 배짱부리기의 이면에는 자신들이 금융당국의 감독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점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우체국보험은 지금이라도 자살보험금 지급과 관련해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 입장 변화가 없다면 주무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래도 버틴다면 차제에 우체국보험도 금융당국의 관리감독하에 포함되도록 관련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민영보험사들이 법을 몰라서, 또는 아깝지가 않아서 수백억원의 자살보험금을 지급한 것이 아니다. '형평성'이나 '역차별'논란으로 비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우체국보험에 대한 적절한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우체국보험이 눈앞의 이익에 집착하다 자칫 소비자들의 신뢰를 잃는 크나 큰 우를 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이는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