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홍승희기자] 연말 미국의 금리인상은 이미 예견됐던 일이다. 그래서 이달 금융통화위원회를 열며 한국은행도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미국에 맞춰 금리인상을 해야 한다는 쪽은 금융시장만을 봤고 경기회복을 위해 금리인하가 필요하다는 쪽은 실물경제만 봤지만 한국은행은 그 양쪽을 모두 봐야했고 결론은 ‘금리동결’. 그렇게 한국 금리는 6개월째 제자리걸음이다.

한국은 국제외교에서만 샌드위치 신세가 아니다. 경제에서도 어정쩡하게 가운데 낀 상태다. 개인소득이 3만 달러를 넘본다느니 하는 말로는 위안이 되기 어려운 거대한 나라들 틈에서 한단계 더 도약할 힘을 축적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신흥개발도상국들의 값싼 인건비 시대로 되돌아가며 국민 개개인에게 2만 달러 넘어선 한국경제의 현실을 살아가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보통의 국민들이 종종 헷갈리는 일 중의 하나가 국민소득이 올라가면 그만큼 가처분소득이 느는 것처럼 느낀다는 점이다. 물론 소득은 늘지만 물가가 소득이 느는 그 이상으로 앞서 오른다는 사실을 별개로 분리해 생각하려는 이들도 꽤 있다. 물론 깊이 생각하면 다 아는 얘기지만 그 지식이 그다지 체화되지 못한 탓이다.

소득과 물가의 관계에 대해 희미하게나마 처음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고등학생 시절 같은 반에 외교관 자녀가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대학입시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 그 친구가 외국유학 얘기를 꺼내들었다. 국내에서 원하는 대학에 못 들어가면 일본 유학을 생각해 보겠다고.

그래서 우리는 물었다. 왜 하필 일본이냐고.

그때 그 친구가 답하기를 미국은 물가가 한국의 10배쯤 돼서 너무 부담되기 때문에 3배쯤 되는 일본을 고려하고 있다고. 물론 그 친구는 어머니가 일본인이었기 때문에 일본행을 좀 더 쉽게 고려했던 것 같기도 하지만 각국의 물가가 어떻게 다른지도 알았고 국민소득이 많다고 그만큼 소비여력이 커질 수 없다는 사실도 어렴풋이 느꼈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대학입시를 앞두고 있던 상황에서 구체적으로 그런 문제를 심도 있게 고민해 볼 처지는 아니었다.

대개의 사람들은 이처럼 어려서부터 경제에 대한 실질적 개념을 접하지 못한 채 대학에서조차 어렵고 골치 아픈 개념서 한두 권 겅중겅중 건너뛰며 읽다 졸업하기 십상이다. 그나마 문과계열이나 이과계열은 그마저도 경험할 기회가 없지만.

그런 국민들마저 요즘은 저마다 정책에 훈수를 두고 싶어 한다. 그래서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금리를 올려야 되느니, 내려야 되느니 의견도 구구하다.

듣다보면 꽤 그럴싸한 견해들도 있고 이쪽저쪽 다 타당성이야 있지만 여전히 우리 의식이 경제개발시대의 논리에 세뇌된 상태에서 못 벗어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특히 경기부양을 위해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는 논리를 접하면 그게 지금 한국의 현실에서 적합한 논리인지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벌써 십 수 년째 자금이 풀리고 금리가 내려도 기업은 신규 사업 투자를 안 하고 있다. 돈이 없어서 못하는 게 아니라 자신 있게 달라붙어 할 만한 아이템을 고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선택의 기로에서 선택하지 못하는 것도 병이라는 데 지금 한국에선 힘 가진 이들이 죄다 그런 꼴이다. 그저 안전해 보이는 기업 인수합병이라면 좀 달려들까 몰라도.

물론 세계적 기업들 속에서 규모의 경쟁력이라면 여전히 취약한 한국 기업이지만 합작이든 컨소시엄이든 방법은 찾아 볼 수도 있을 텐데 뭐든지 독식하는 데만 익숙한 문화 탓에 그런 방법은 고려조차 안되는 게 아닌가 싶다.

현재 한국은 정부가 돈을 풀거나 금리를 낮추면 기업은 뒷짐 지고 대뜸 부동산 과열부터 불러온다. 그것도 극히 제한된 지역에서 투기성 짙게.

그렇게 남의 돈으로 떼돈 벌어보겠다는 일종의 사행심리가 약삭빠른 이들, 그보다 앞서 정부 정책관련 정보에 가까운 이들부터 번져나가기 시작한다. 그러다 어리숙한 서민들이 몸이 달아 그 대열에 끼어들 때쯤 되면 정부가 갑자기 규제를 들고 나온다. 그래서 지금처럼 심각한 가계부채 문제가 시작됐다.

한국은행의 금리결정에 가장 크게 발목 잡는 요인 역시 아무래도 가계부채 문제일 것이다. 그러니 미국 금리인상으로 해외자본 유출 우려가 있어도 금리 인상은 꿈꾸기 어렵다. 여전히 경기부양 운운하는 논리들이 횡행하는 탓도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