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정초원기자] "인위적인 총량관리를 통해 가계부채를 단기에 줄이면 부작용이 생긴다. 총량보다는 질적 구조개선이 우선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폭발하는 가계빚 문제에 대한 해법을 물을 때마다 언제나 '총량'보다는 '질적 개선'이 더 중요하다는 답을 내놨다.

부채의 규모보다는 상환 가능성이 떨어지는 '악성 부채'를 줄이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는 뜻이다. 정부가 '상환능력 내에서 빌리고 처음부터 나눠 갚는다'는 원칙의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을 도입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였다.

그런데 우리나라 가계부채의 질은 이런 정부의 철학과 달리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 은행권을 중심으로 처방한 가계부채 대책 탓에 2금융권 대출이 늘었고, 저소득층의 부채비율이 확대되며 부채가 점차 악성화 될 우려가 커진 것이다.

실제 한국은행이 발표한 올 3분기말 가계신용을 보면, 비은행권 대출의 비중이 39%로 전년 동기(30%)에 비해 크게 늘었다. 특히 담보 없이 빌려주는 '생계형 대출'이 늘어나는 모습이다.

사실 정부가 은행권 대출을 규제하면 2금융권으로 수요가 몰리는 '풍선효과'가 발생하리라는 것은 예견된 결과였다. 근본적인 해결책인 소득 증가가 없는 상황에서 대출만 조일 경우, 당장 돈이 필요한 서민층은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차선책을 찾아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다른 뇌관으로 분류되는 자영업자 대출도 문제다. 서민 경기의 영향을 크게 받는 업종이 대부분인 탓에 파산 리스크가 크고, 대출을 받는 목적도 사실상 사업보다는 생계형에 가까워 악성 부채로 갈 가능성이 높다.

결국 금융당국이 8·25 가계부채 대책을 내놓은 지 3개월만에 추가 대책을 내놓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3분기중 가계빚 규모가 1300조원에 이른다'는 한국은행 발표에 대비해, 금융당국도 후속조치 발표 시점을 같은 날로 맞췄다. 가계부채 대책 후속조치에 따라 상호금융과 새마을금고 대출도 조여질 전망이다.

물론 급변하는 경제상황에 발맞춰 유동적인 처방을 내놓는다고 볼 수도 있지만, 애초 선제적인 조치가 이뤄졌더라면 굳이 후속 조치를 내놓지 않았어도 됐을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실제로 정부가 가계부채 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단기 처방"이라는 지적이 빠지지 않고 나왔다. 결과적으로 이번 대책도 근본적인 대책은 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시장에서도 감지하고 있다.

이제 은행권 대출에 이어 2금융권 대출까지 어렵게 됐으니, 조만간 서민들은 대부업으로 눈을 돌려야 할지도 모른다. 일부 전문가들 가운데서는 서민들이 돈을 빌릴 수밖에 없는 경제 환경이 지속되는 한, 당장 대출을 조이는 것으로 가계대출의 질을 개선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인 예측도 나온다.

그렇다고 정부가 가계빚 문제에서 손을 떼고 대출을 자유롭게 풀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분명한 것은 근본적인 대책 없이 미봉책만 거듭한다면, 언젠가 '백약이 무효'가 되는 상황까지 내몰릴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해법을 잃은 가계빚 문제가 우리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