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비관세 장벽 앞에서 머뭇대는 한국
[홍승희 칼럼] 비관세 장벽 앞에서 머뭇대는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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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홍승희기자] 요즘 젊은이들의 의식을 읽는 한 방법으로 판타지소설 사이트를 드나들어본다. 그러면서 의도하지 않게 배우는 것도 있다.

평소 이렇다 할 운동이란 걸 해본 적이 없는 필자는 검술이나 격투기 등이 연습량이 늘고 경험이 쌓일수록 눈이 빨라져 상대의 행동에 빠르게 반응할 수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가 판타지소설 몇몇 개를 읽고서야 알았다. 아마도 눈이 빨라진다는 것은 주변 상황을 넓게 보고 상대의 행동패턴을 읽는 능력이 커지는 것일 터다.

소소한 접촉사고 정도는 수시로 내며 익숙해져가는 개개인의 운전 능력이나 기업의 위기관리 능력이나 다 마찬가지일 것이다. 작은 파도를 자주 맞으며 연륜이 쌓인 기업이라면 큰 파도도 의연히 넘길 수 있겠지만 신생기업이 느닷없이 큰 파도를 만나면 감당하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신생기업들의 생존률이 낮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런데 같은 관점에서 보자면 대한민국은 여전히 신생국이다. 그래서인지 한국 경제를 지탱하는 주축으로 떠받들어진 대기업들 역시 신생기업 수준이다.

전국이 떠들썩한 사건사고가 터져도 대한민국 정부는 제때 합당한 대응을 못하고 우왕좌왕하다 조기 수습의 시기를 놓친다. 그런가 하면 정책 하나 내놓기 위해 수많은 변수들을 점검하고 고려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시간 바쁘다는 핑계로 충분히 살피지 못한 채 내놓은 정책들로 인해 후유증이 만만찮다.

세월호 사건이 그랬고 경주 지진 대처 또한 어설펐다. 해마다 몇차례씩은 한반도 주변을 휩쓰는 태풍 같은 일상적 재해에 대한 대비조차 미흡해서 일을 키우기 다반사다.

물론 정부만 그런 건 아니다. 우리 사회 곳곳이 다 그 모양이다. 정부는 비능률의 집합체고 기업은 효율성의 상징인양 메이저 언론들이 호들갑 떨고 친재벌 정권들이 부추겨줬지만, 그래서 종종 정부를 능멸하듯 눈 내리깔고 보던 기업들 또한 크게 나을 게 없다.

최근 삼성전자의 갤럭시노트7 소동에 초기엔 신속히 대응하나 싶었지만 아직도 발화원인을 못찾아 위기를 이어가고 국내 고객들에게서는 제대로 제품 회수를 해주지 않아 해외 공항에서 수많은 정보가 담긴 기기들을 압수당하게 만든다. 스마트폰에 얼마나 많은 개인정보며 비즈니스 정보들이 담겨 있는 데 그걸 외국공항에서 압수당해도 제대로 조치하지 못하고 있다.

해외 시장만 신경쓸 줄 알았지 국내시장은 알아서 커주는 시장 취급하는 데 그러다간 젊은이들부터 애플로 빠르게 옮겨 탈 수 있다는 생각은 왜 안하는가. 애플보다 국내 시장에서 저가구입이 가능한 장점이 물론 크지만 단 한 푼에 목매다는 부모세대와 달리 부모 주머니를 화수분으로 여기는 청소년들의 판단기준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다 낭패보지 않을 자신을 할 수 있을까.

현대차는 세타 엔진 결함 논란으로 미국 소비자들이 집단소송을 제기하면서 뒤늦게 수리비용 전액을 보상해주길 합의하고 그 뒤에야 뒤늦게 역차별 논란을 피할 방도로 한국에서도 엔진 보증기간을 미국만큼 늘리기로 결정했다.

하긴 이런 기업의 태도가 어디 국내 기업들뿐인가. 한국 시장, 한국 소비자를 봉으로 아는 외국 기업들은 줄줄이 이어진다.

왜 그럴까. 이유는 한국정부의 친기업정책이 중심도 없이 이어지는 탓이다. 그러다보니 너무 과한 보호가 기업들의 응석만 키워주고 책임감은 제대로 심어주지 못했다.

늘 요구만 할 줄 알았지 정책자금 잘 받아쓰고 정치적 보호를 받으며 기업을 키웠다는 사실은 자각조차 하지 못한다. 성장은 잉여로부터 나오고 그 잉여는 분배를 줄임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쉽게 덩치를 키우다보니 덩치에 합당한 체력을 못 키웠다. 작은 충격에도 우왕좌왕하고 한두 가지는 경험을 토대로 대처하는가 싶은 데 곧 한계에 부딪친다. 왜 그럴까.

기업도, 정부도 경험이 늘면 일단 보는 시야가 넓어져야 하는 데 학습된 틀을 벗어나 스스로 볼 줄을 모른다. 게다가 우리 사회는 왜 상대편의 전의(戰意)를 읽도록 훈련하지 못하고 영원한 내편도 없고 영원한 적도 없다는 사실을 모르도록 국민을 길들일까. 그러니 우방이라 쓰고 종주국으로 읽는 미국이 비관세장벽을 높이며 작은 흠집도 크게 키워 대응할 것이라는 당연한 이치조차 깨닫지 못한다. 그렇게 상대에 대해 무지하니 당연히 대응은 늦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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