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금융당국의 총파업 저지 미션
[기자수첩] 금융당국의 총파업 저지 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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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이은선기자] "인사부에서 (당국) 보고용으로 집계한 수치와 실제 참여한 숫자의 차이가 큽니다. 은행 입장이 있다 보니 파업 참여인원수는 공개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습니다."

한 시중은행에 9·23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 총파업 참여인원을 묻자 이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이날 금융감독원이 집계한 은행권의 파업예정인원은 1만8000여명으로 전 은행원의 15% 수준이다. 4대 시중은행의 참여율은 전체의 3%에 그쳤고, 지점 별 최소인원 이상이 남아있어 고객 불편도 크게 나타나지 않았다.

반면 금융노조가 상암에 집결한 조합원들을 집계한 결과는 판이했다. 이날 오후 4시 기준 7만5000명을 넘어섰다는 주장이다. 인원노조 현장 집계의 불확실성과 지방에서 상경하는 노조원 수가 많아 시간이 갈수록 인원이 늘어난다는 점을 감안해도 양측의 간극은 지나치다.

통상 노조 집회의 경우 주최측의 집계가 다소 부풀려지는 경향이 있지만, 윗선을 의식한 각 은행들이 실제보다 다소 축소된 수치를 보고한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은행들의 당국 눈치보기 행태는 파업 이전부터 국지적으로 발생해왔다. 지난 22일에는 한 국책은행의 지점장들이 파업 참가 조합원들의 명단을 제출하라며 직원들을 밤 늦게까지 붙잡아놓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노조가 공개한 녹취록에 따르면 "지점에 조합원 50%는 무조건 남고, 그렇지 않을 경우 책임을 물리겠다는 경영진 지침이 내려왔다"며 인사상 조치까지 거론해 논란이 됐다. 또 대부분 은행에서 지점장이 직접 조합원을 불러 불참을 종용하는 한편, 일부 시중은행 부행장급 임원은 "조합원 중 단 한 명도 파업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는 엄포를 놓기도 했다.

'소비자 불편이 있어서는 절대 안된다'는 당국 지침이 내려온 이상 각 은행들로서는 발등의 불부터 꺼야했을 것이다. 더욱이 파업 당일 금감원은 17개 은행 본점에 직원들까지 파견해 은행들을 압박했다.

일단 이날 결과만 놓고 보자면 금융당국과 각 은행의 파업저지 '미션'은 성공을 거둔 셈이 됐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앞서 언급했듯 표면적으로 드러난 파업 참여자 수가 은행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금융당국은 성과주의 도입 당위성에 매몰돼 각계 각층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막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얼마전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한 리서치 설문조사를 거론하며 국민의 71.1%가 성과연봉제에 찬성했다고 소개했다. 이는 당국이 성과연봉제 도입을 강행하는 핵심동력이기도 하다. 반면 최근 금융노조가 발표한 리서치 조사의 결과는 사뭇 다르다. 성과연봉제에 '반대한다'는 국민은 13%에 그쳤지만, 국민의 62.9%는 정부가 성과연봉제를 '성급하게 추진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61%는 근로자들과의 충분한 협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답했다.

저금리·저성장 시대에 직면한 은행권의 성과연봉제 도입 자체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지만, 수많은 은행원들이 의문을 품고 있는 '정량적 성과 측정'에 대한 방법론과 설득작업 역시 당국과 각 은행의 '선행 미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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