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리딩 컴퍼니의 역할
[기자수첩] 리딩 컴퍼니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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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김희정기자] 얼마 전 한 대형 생명보험사 홍보 담당자로부터 갑작스레 연락을 받았다. 지난 달 정무위원회 국회의원들을 취재해 쓴 기사를 회사 대관(對官) 업무 담당자가 보고 문의를 요청해 왔다는 내용이었다.

특히 기사 말미에 소멸시효를 이유로 자살보험금(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생보사들에 대해 부정적 언급을 한 의원실 관계자가 누구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다수 정무위 의원실 관계자들은 국회의원 이름을 걸고 직접 나서는 걸 부담스러워 했다. 대법원 판결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 국회의원의 의견이 나오는 것이 자칫 3권 분립 원칙에 어긋날 수 있어서다. 익명을 요구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더욱이 금융회사의 '시어머니' 격인 금융감독원이 자살보험금 지급을 거부한 생보사들을 강하게 압박하며 대대적인 현장검사를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해당 생보사가 국회 움직임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자못 짐작이 갔지만, 어떤 대답을 내놔야 할지 판단이 잘 서지는 않았다.

사실 '리딩컴퍼니'로 통하는 해당 생보사를 바라보는 업계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경쟁사들이 넘보기 힘든 큰 덩치도 이유지만, 그룹을 등에 업은 막강한 '힘'을 바탕으로 보험시장을 좌지우지 한다는 시각이 팽배하다.

그런데 보험업계의 '뜨거운 감자'인 자살보험금 문제와 관련해서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최전선에서 금융당국에 맞서는 리딩컴퍼니가 있어 여타 생보사들이 큰 불편없이 한배를 탈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소형사들로서는 정말 힘든 시기에 리딩컴퍼니의 보호를 받고 있는 셈이다.

반대로 이 보험사가 자살보험금 지급을 결정했더라면 업계 관행상 중소형사들의 도미노 지급과 경영상 타격은 불가피했을 수 있다.

물론 생보사들이 약관을 통해 약속한 자살보험금이 온전히 지급돼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법조계 판단 역시 갈수록 소비자 보호에 무게가 실리고 있고, 여론 역시 보험사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게 현실이다.

만약 대법원이 소멸시효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 이 리딩컴퍼니는 중대한 책임을 짊어짐과 동시에 이름값을 톡톡히 치를 수 있다. 한가지 의미심장한 대목은 이 대형 생보사가 보유한 미지급 자살보험금 규모가 여타 생보사에 비해 적을 뿐더러 경영에 미치는 수준도 미미하다는 점이다. 이유야 어찌됐건 이번만큼은 업계 리딩컴퍼니로서의 역할을 인정해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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