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촌극'으로 끝난 4년 금리담합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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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정초원기자] "공정거래위원회 심사관은 존재하지 않는 CD(양도성예금증서) 금리 담합을 의심한 나머지 기본적인 전제 사실조차 오해하고 있습니다. 심각한 오류에 근거한 담합 추정입니다."(금리 담합 관련 A은행 변호인)

공정위가 무려 4년간 끌어온 시중은행들의 CD 금리 담합 의혹이 끝내 헛발질로 끝났다. 최종 결과는 '심의절차 종료'다. 공정위가 담합에 대한 사실관계를 밝히기 힘들어 심의를 종료한다는 뜻이다. 6개 시중은행에 완전한 면죄부를 주는 '무혐의' 결론은 아니지만, 혐의를 입증하지 못했다는 데서 '사실상 무혐의'나 다름없는 결론이다.

사실 시중은행 CD 금리 담합 조사는 공정위가 조사에 들어간 이후 장장 4년 동안이나 실마리를 잡지 못한 난제여서, 올 초만 해도 미제에 가까운 사건으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었다. 때문에 올해 공정위가 다시 칼을 빼든 것으로 알려졌을 때는 빼도 박도 못할 확실한 담합 증거가 확보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무성했다. 담합으로 결론났을 때 은행들이 물어야 할 과징금과 소송 비용이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잇따랐다.

하지만 지난달 22일 열린 공정거래위원회 전원회의에서는 회의가 완전히 끝나기도 전에 이미 은행들이 승기를 잡은 듯한 분위기였다. 공정위가 조사 초기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다"며 골머리를 앓던 상황에서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회의에서 각 은행 변호인들은 "담합으로 볼만한 외형적 일치도, 정황 증거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고, 결과적으로 회의에 참석한 상임·비상임 위원들도 이같은 주장에 동의한 셈이 됐다.

전원회의에서는 좀 더 명확한 담합 정황을 요구하는 위원들의 질의 탓에 오히려 공정위 심사관이 진땀을 빼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또 심사관이 은행별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탓에 잘못된 증거를 담합 정황으로 제시한 경우도 있었다.

심사관은 특수은행인 NH농협은행이 KDB산업은행, IBK기업은행과 달리 시중은행 수준으로 고시수익률을 적용했다는 점을 문제삼았지만, NH농협은행의 경우 CD 금리와 관련해서는 특수은행이 아니라는 사실이 변호인에 의해 해명된 것이다. 심사관이 이 증거에 오류가 있었다는 점을 시인하자 몇몇 방청객은 실소를 터뜨리기도 했다. 이변이 없는 한 은행들의 승기는 꺾이지 않을 듯 했다.

은행 측 변호인들이 전원회의 내내 빈번하게 사용한 단어는 다른 무엇도 아닌 '오해'다. 공정위 사무처가 은행채나 CD 금리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한 탓에 오해를 거듭했고, 논리적인 오류를 범했다는 게 대부분 은행들의 주장이었다. 결국 4년간의 시름 끝에 공정위에 남은 것은 '전문성 부족'이라는 오명밖에 없는 듯하다. 담합으로 결론내리기 위해 억지스런 추정을 시도했다는 비판도 뒤따른다.

공정위 측은 "CD금리 결정과정에 있는 여러 경제 주체들과의 면담, 의견청취 등을 통해 시장상황을 확인한 바 있으며, 시장상황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해당 사건을 처리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당시 전원회의 심판정 앞에서의 공정위 사무처 측 모습을 떠올려보면 이같은 해명은 무색해진다.

'경제검찰'로 불리는 공정위가 헛발질을 할 수록 불안해지는 것은 결국 소비자다. 시장과 소비자의 신뢰를 잃은 경제검찰이 정작 필요할 때 제대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 탓이다. 은행들은 4년의 굴레를 벗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지만, 금융소비자들은 걱정의 한숨을 내쉬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공정위의 거듭되는 헛발질이 앞으로 진짜 방망이를 들이대야 할 상황에서 자충수가 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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