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어느 국책은행 직원의 한탄
[홍승희 칼럼] 어느 국책은행 직원의 한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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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홍승희기자] 대우조선의 분식회계 논란이 불거지기 며칠 전 산업은행 사람을 만났다.

직접 관계자는 아니지만 조선업 구조조정 문제로 행내가 워낙 어수선한 분위기여서 힘들겠다는 위로의 말에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낙하산 인사들이 공기업뿐만 아니라 국책은행이 떠안은 부실기업에까지 내려가 휘젓는 통에 경영정상화에 이만저만한 걸림돌이 아니라는 거다. 그러면서 대우조선의 예를 들었다.

낙하산 인사가 경영진을 죄다 차지하고 앉으니 산업은행으로서는 돈만 쏟아 부을 뿐 경영개선에 개입할 여지가 사실상 봉쇄돼 궁여지책으로 대주주 자격을 내세워 감사를 한사람 내려 보냈다고 한다. 그런데 감사가 내려가자 얼마 안돼 경영진에서는 갖가지 소송을 제기해 일을 할 수 없게 만들더니 끝내는 업무자격정지까지 받아냈다고 한다.

그 통에 산업은행으로서는 내부감사조차 할 수가 없는 처지가 됐으니 대우조선 경영부실의 책임을 과연 산은 홀로 지는 게 타당하냐고 그 산은맨은 볼멘 소리를 쏟아냈다.

그의 하소연을 듣다보면 대한민국 경제가 현재 뒷걸음질 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드러나 보여 한숨이 절로 난다. 물론 정치권력의 압력에 맥없이 허물어진 책임은 전적으로 산업은행에 있지만 그 산업은행 경영진에는 과연 낙하산 인사가 없었는지를 보면 답은 좀 더 명확하게 보인다. 이런 사례가 어디 대우조선 하나로 그치겠는가.

구조조정의 칼날을 제일 먼저 조선 해운업으로 잡은 정부의 결정에 그 타당성을 들어 시비할 여지는 별로 없지만 굳이 문제를 다시 따져 보기로 들면 일단 조선업이나 해운업이나 다 세계적인 불황이 닥치면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업종이라는 점을 너무 도외시한 것은 아닌지 먼저 묻고 싶어진다. 경기가 좋아지면 당장 수요가 그보다 앞서 일어나는 곳이기도 하니 말이다.

물론 조선업의 경우 중국의 저가 공세에 이미 몇 년 전부터 내리막길을 걸어왔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중국이 공세를 펴는 업종마다 손 놓고 물러나기로 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업종은 과연 얼마나 될 것인지, 그만한 대비책은 있는 것인지를 또 묻지 않을 수가 없다.

게다가 조선업을 버리는 일은 해양대국의 꿈을 접는 일이요, 해군 함정 자체 개발의 길을 아예 틀어막는 일이 될 수밖에 없다. 해군기지를 옮기고 넓히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지 않는 바에는 그 가능성을 또한 염두에 뒀어야 하지 않는가.

조선업은 막대한 설비투자와 인력양성을 필요로 하는 업종이어서 한번 놓치고 나면 다시 손대기도 쉽지 않은 사업이다. 중국의 저가공세에 맞설 신기술 개발 등에 더 투자할 정부 의지는 애초에 싹도 보이질 않으니 중국이 시장 내놓으라면 모든 시장을 다 내줄 요량인지 답답하다.

더우기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기간산업체 하나를 날려버릴 계획이었다면 애초에 그곳에 낙하산 인사들을 내려 보내지는 말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 입맛이 더 쓰다. 아예 기업을 결딴낼 구실이 필요해 조선업 경영에 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 탐욕만 그득한 낙하산 인사들에게 경영을 맡겨 다 망쳐놓게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조차 들게 한다.

그렇다면 과연 누굴 위해 그런 일을 벌이는 것인가. 그게 과연 정부가 원하는 일자리 창출 방책이고 국민복지 증대책이며 그렇게 하면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되는 것인가. 이게 오직 미래 먹거리를 찾기 위해 필요한 조치인가.

중구난방 경제성장 방법론들은 판을 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체계적으로 문제점들을 그 본질부터 파헤치고 논리적 해법을 찾는 모습을 보기는 힘들다. 그저 정치적 난제들이 등장할 때마다 즉흥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정략적 경제대책들이 국민들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 뿐이다.

감사원 감사결과가 나오고 각 미디어들은 일제히 대우조선뿐만 아니라 그 법정관리 주체인 산업은행의 기업 구조조정 시스템이 한계를 드러냈다고 요란하게 분석하고 비평했다. 다 맞는 말이다. 구조적인 문제들을 다시 점검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다만 문제는 그 어떤 시스템을 도입하더라도 지금처럼 국책은행을 정권의 하수인으로 알고 인사권을 남용하는 사례들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지 않는 한, 그저 정권 친화적인 그룹들을 위한 새로운 프로젝트 하나 더 늘어나는 수준에 그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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