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산업은행의 구차한 항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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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정초원기자] 결국 '언발에 오줌누기'였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무책임이고, 몰랐다면 무능이다. STX조선해양에 부질없는 혈세를 쏟아부은 KDB산업은행에 대한 세간의 혹평이다.

골든타임이 지날대로 지난 STX조선해양은 뒤늦은 법정관리 수순을 밟게 됐다. 사실상 부도 상태라는 민낯이 드러난 상황이라 '실패한 구조조정'이라는 말 외엔 변명의 여지를 찾기 힘들어 보인다.

3년 전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내놨던 나름의 희망섞인 전망도 지금 돌이켜보면 'NIMT(Not in my term, 내 임기 동안에는 책임질 일을 하지 않는다)'에 불과했던 것일까.

"실사에서도 STX조선해양의 계속가치가 높은 걸로 나왔습니다. 신규자금을 투입하고 단계적으로 정상화 방안을 이행할 계획입니다."(2013년 4월, 홍기택 회장) "사업구조조정, 수주합리화, 인적구조조정을 실행할 경우 2017년부터는 안정적인 영업이익을 시현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2015년 12월, 산업은행)

수차례 '지역경제'와 '회생 가능성'을 언급하며 4조5000억원을 쏟아붓던 홍 회장은 몇달 전 임기만료를 앞두고 산업은행을 떠나 AIIB 부총재 자리로 옮겨갔다. 절묘한(?) 타이밍이다.

물론 산업은행도 할말은 있다. STX조선처럼 거대한 기업을 법정관리로 보낼지 말지를 결정하는 문제를 일개 국책은행이 판단할 수 있느냐는 항변이다. 구조조정의 골든타임으로 거론되는 지난 2013년 당시, 산업은행 역시 법정관리를 고려했다는 의미로 읽힌다.

결국 6조원짜리 수업료는 또 다시 '네 탓 공방'으로 귀결되는 형국이다. 산업은행이 내세우고 있는 변명을 거칠게 축약하면 '어느정도 예견은 했지만 전적으로 우리 책임만은 아니고, 당시엔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다' 정도일까.

지난해 수조원대 부실이 뒤늦게 드러난 대우조선해양 부실회계 사태에서도 대주주인 산업은행의 태도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재무담당 임원까지 파견나가 있었지만 '정말 몰랐다'가 산업은행의 공식 입장이었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무책임, 무능 외에는 다른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당시에도 산업은행은 관리부실의 책임을 대우조선해양의 순혈주의와 정부, 정치권의 입김 탓으로 돌렸다.

과거에도 산업은행은 '정부 입김에서 자유롭기 힘든' 특수성 때문에 책임론에서 번번이 비켜설 수 있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산업은행의 실패'와 '정부의 실패'가 서로 동떨어진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네탓 공방은 결국 제 얼굴에 침뱉기라는 얘기다. 사사건건 산업은행에 간섭하는 정부나, 사건사고 때마다 번번이 정부 탓으로 돌리는 산업은행이나, 국민들에게는 책임 회피를 위한 구차한 변명으로밖에 비쳐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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