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물음표 투성이 '자살보험금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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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김희정기자] 자살한 보험계약자에게 약관대로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 불거진 이른바 '자살보험금 사태'가 점입가경 형국이다. 대법원의 보험금 지급 판결이 나온지 불과 6일 만에 결과가 뒤집힌 것이다.

20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의 1심 판결에서는 '소멸시효가 지났다면 자살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계약자의 보험금 청구 소멸시효(2년)에 입각한 판결이다.

생명보험사 임원들을 소집해 '기간에 상관없이 자살보험금을 모두 지급하라'고 엄포를 놓은 금융감독원은 말 그대로 머쓱해졌다. 반면 생명보험사들은 표정관리에 분주하다.

최근 며칠간 보험업계는 재점화 된 자살보험금 사태로 적잖이 시끄러웠다. 보험사들이 주장해온 '자살 조장' 논란부터 약관을 허가한 금융당국 책임론, 그리고 보험사들의 약관 베끼기(붕어빵 보험) 탓이라는 자성의 목소리도 곳곳에서 나왔다.

하지만 이런 네탓 공방과는 달리 자살보험금 사태의 책임 소재를 가리는 작업은 제자리 걸음만 해왔다. 우선 자살보험금의 정확한 피해규모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언론 보도에 가장 많이 인용돼온 김기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국정감사 자료에서조차 오류가 발견된다. 자료를 보면 AIA생명은 자살보험금 계약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확인 결과 AIA생명도 소액의 자살보험금 계약을 보유하고 있었다.

또 삼성생명이 공시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회사가 지급해야할 자살보험금 액수는 2014년말 197억2400만원, 2015년 말 156억3600만원으로 집계됐다. 1년 사이 40억8800만원이 되레 줄었다. 당초 김기준 의원 측이 발표한 금액 563억원과 큰 차이를 보인다.

금감원 역시 으름장을 놓기는 했지만 법원 판단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모습이다. 본래 보험상품과 관련된 업무는 보험감리실 담당이지만 자살보험금을 지급하라고 권고한 곳은 준법성 검사국으로 보인다.

검사국은 중대하거나 반복된 법규 위반 사항을 적발해 대표이사(CEO) 해임권고까지 내릴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부서다. 그러나 실무자들이 자리를 옮긴지 얼마 안 된 탓에 자살보험금 사태에 대한 이해도가 얼마나 높은 지도 의문이다.

피해자는 있는데 규모는 물론, 책임질 주체도 발을 빼는 말그대로 총체적 난국인 셈이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보험상품의 약관은 법적 효력을 지님과 동시에 고객과의 약속이라는 점이다. 계약자들의 고지의무 실수는 보험사기로 몰아세워 계약을 해지하는 보험사들이 베낀 자살보험금 약관에 대해서는 부작용(자살) 운운하며 무효라고 주장하는 것은 옹졸하기 짝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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