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칼럼] 총선이 남긴 구조조정의 교훈
[홍승희칼럼] 총선이 남긴 구조조정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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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이 주창해온 구조조정에 2개 야당이 합창을 하고 나서며 기업구조조정이 지금 경제계 최대의 이슈가 됐다. 특히 경기불황까지 겹치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조선·해운업이 가장 먼저 도마 위에 오르며 2개 대형 조선소가 몰려 있는 거제도는 이미 현지 주민들의 생활에마저 찬바람이 불고 있다고 한다.

언론에서는 그동안 정부주도의 구조조정이 몰고 올 대량 실업사태를 염려해 반대 입장을 보여 왔던 더민주의 경우 지난 총선에서의 압승을 계기로 입장을 바꿨다는 의견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정국을 주도할 힘을 배경으로 구조조정의 방향에 일정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자신감이 경제적 당면과제 중 하나인 구조조정에 적극적 자세로 전환한 것이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구조조정과 노동개혁법을 패키지로 처리하려는 정부여당의 방식을 전면적으로 거부하며 쉬운 해고를 가능하게 하고 비정규직만 양산하게 될 노동개혁법은 구조조정 문제와는 별개라 선을 긋고 있는 것이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인정하되 '성장'을 포기하지 않는 '포용적 성장'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법인세 정상화, 국민총소득(GNI) 가운데 가계소득 비율과 국민총소득 대비 노동소득분배율, 중산층 비율 등을 모두 70%대로 끌어올린다는 ‘777플랜’을 장기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이에 비해 국민의당은 조금 더 이상적 제안을 하고 있다. 구조조정을 넘어 구조개혁으로 나아갈 것을 주문하고 있다. 거시적 관점에서 산업체계 전반에 대한 개혁을 강조하고 나섬과 동시에 ‘공정성장’을 경제기조로 제안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납품단가 연동제, 초과이익공유제 등을 통한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 벤처투자환경 개선, 미래 신성장 산업 육성을 위한 집중 투자 등을 중점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여야가 구조조정에 대해 총론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긴 했으나 이런 각 당의 정책적 시각 차이로 인해 각론에서의 합의도출이 녹록치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이 대목에서 진정으로 정치다운 정치의 면모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제까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에만 몰두하던 여당이 총선 결과로 힘이 많이 빠진 상태에서 얼마나 협상의 유연성을 보일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 입장들, 정당 간 이해관계가 어찌되든 이제까지 구조조정이 곧 인력감축이라는 단순 편향적 논리가 지배해온 우리 사회에서 경쟁력을 잃은 부문을 정리하고 합리적 인수`합병을 통해 진정한 의미에서의 구조조정을 하려는 기업의 인식 전환 없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식의 구조조정이 제대로 될 수는 있을지 여전히 의구심을 지우기 힘들다.

기업이 경쟁력 있는 부문에 집중하기 위한 구조조정을 진정성 있게 해나가려면 정리될 부문의 노동자들에 대한 전환교육 등에도 스스로 힘을 쏟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옳다. 단순히 대량해고에만 몰두하며 인건비 줄이는 것이 곧 구조조정이라는 편향된 등식만을 고집한다면 한국경제에 미래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80년대에 국내 대다수 신문사들이 신문제작공정을 전산화하면서 기존 반복노동을 하던 공무국 직원들이 대량해고의 위험에 놓이게 됐었다. 그러나 대개의 신문사들은 공무국 직원들에게 전환교육을 시키며 대부분의 인력을 자체 흡수했다. 그 후 신문사들은 관련 매체들을 확대해나가며 잉여인력들을 전진배치시킴으로써 노사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물론 이런 신문사들의 전향적 태도는 당시 불길처럼 번지던 언론사 노조설립 움직임과 결코 무관하지는 않았다.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있을 때 그들의 권익도 지켜졌던 그 역사는 지금이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정부가 이제까지 구조조정과 노동개혁이라는 이름의 대량해고 길을 동시에 내려는 시도는 그런 점에서 사회적 위험성이 매우 큰 시도였다. 노동자는 곧 소비자이고 주권자 국민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단순히 갑을관계에서 ‘을’이라는 사실만 기억함으로써 사회적 불안감을 키우고 국가경제를 소비 없는 식물인간형 경제로 몰아갈 위험성을 간과한 것이다.

디플레이션을 걱정하면서 한편으로는 국민 다수의 소비여력을 좀먹는 법개정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려다가 젊은 층의 적극적인 투표참여를 유도한 아이러니야말로 지난 총선이 우리 역사에 남겨준 의미있는 교훈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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