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중재의 달인'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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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정초원기자] "성과주의와 관련해 자꾸 본질이 호도되고 있습니다. 금융공기업은 우리(금융위원회)가 주인이기 때문에 관여할 수 있는 겁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4월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언급한 내용이다. 최근 금융노조가 성과연봉제 도입을 둘러싼 노사 갈등의 원인을 금융위원장에게로 돌리자, 이에 대한 답답함을 호소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이다.

특히 임 위원장은 "'관치냐 아니냐'가 주된 논의 내용이 돼야 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노조의 태도를 강경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금융위 산하 7개 금융공기업이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 탈퇴'라는 초강수를 둔 것도 금융노조가 성과연봉제 도입을 협상테이블에 올릴 의지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게 임 위원장의 설명이다.

사실 국내 금융권 특유의 '항아리형 인력구조'와 '저생산성'을 감안하면 성과주의 도입은 막을 수 없는 흐름이라는 것은 금융권 노사 모두가 동의하는 내용이다. 금융노조도 현재 성과연봉제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긴 하지만, "성과주의 문화를 100% 반대하는 게 아니라, 과도한 성과주의를 경계하는 것"이라는 전제를 두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노사 양측이 가장 중시해야 할 부분은 대화와 절차다.

금융노조가 가장 문제를 삼고 있는 부분도 이 문제다. 과거 노사 동의를 통해 정한 법적 교섭권을 무시한 채, '대화가 진척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금융노조와 등을 돌리는 모습에 신뢰를 잃었다는 것이다. 노사 협의를 통해 만든 대화의 창구를 사용자 측이 스스로 깨고 나간 셈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사용자협의회 내부에서 성과주의에 대한 첫 회의를 가진지 불과 두달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내린 결정이라, 다소 성급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금융당국이 못박은 '연내 도입' 스케줄에 맞추기 위해 금융공기업들도 숨이 가빠보일 정도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믿을만한 성과 측정 모델이 나오지도 않은 상황에서 금융당국이 '일단 도입하고 보자'는 식으로 금융공기업을 압박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실 경제관료 시절부터 '최고의 컨트롤 메이커', '중재의 달인'으로 불렸던 임 위원장의 명성을 되짚어보면 최근의 행보는 다소 의아스럽다. 과거 하나-외환은행의 조기통합과 관련해 "통합 인가의 중요한 판단 요소는 노사 합의 여부다", "충분한 노사 대화를 거쳐야 한다"는 뜻을 거듭 밝혔던 것과도 대비된다.

임 위원장은 올 들어 노사 갈등이 연일 격화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줄곧 "빠른 시일 내에 성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만을 고수해왔다. 수십년간 뿌리내린 관행을 뒤엎으려면 무엇보다도 시간과 절차가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임 위원장이 잘 아는 대목일 것이다. 오히려 지름길을 건너려다 임 위원장이 그토록 벗겨내고 싶어했던 '관치금융'의 오명을 다시 뒤집어쓰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임 위원장이 기자간담회에서 언급한 "금융공기업의 주인은 우리(금융위)"라는 표현이 곧 '목표(성과주의)를 위해서라면 어떤 방식이든 상관없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진정한 '중재의 달인'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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