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개헌안의 미래, 불륜 혹은 로맨스?
<칼럼>개헌안의 미래, 불륜 혹은 로맨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해마다 연초가 되면 뭔가 하나씩 터뜨리곤 하던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1년여를 남겨둔 올 연초에는 대통령 4년 연임제만을 의제로 한 원 포인트 개헌안을 정치권에 던졌다. 일방으로 흐르던 물살에 일단 소용돌이가 생겼다.
한나라당은 곧바로 ‘꼼수’ 운운하는 대변인 성명과 함께 반대의견을 내놨고 따라서 성사 가능성은 낮아졌다. 그렇다고 해서 파장이 쉽사리 잠재워질 것으로 속단하기는 아직 일러 보인다.

우선은 이 의제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학계에서부터 시작된 5년 단임제의 폐해 지적과 4년 중임제 제안들이 정치권에서도 중요한 대안으로 여겨져 온 터이기 때문이다.
즉각 반대하고 나선 한나라당 역시 이번 노무현 대통령이 제안한 안과 같은 주장을 그동안 꾸준히 해온 터다. 또한 청와대 쪽이 주장하듯 2007년 중 권력체제 개편을 위한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 당시 공약이었던 것도 분명하다. 지금은 단지 ‘노무현이 하니까’ 무조건 안 된다는 반노 정서 때문에 ‘지금은 시기가 아니다’라는 반대의견들이 나오고 있을 뿐이다.

“며느리 미운 시어미가 며느리 발뒤꿈치가 달걀 같다고 흉본다”는 우리 속담이 새삼스러운 요즘이다. 우리 사회 전체가 어느새 못된 시어미 증후군을 보이게 된 것인지도 참으로 신기하다.

지금 정권이 하면 안 되지만 우리가 집권하면 개헌해야 한다는 주장은 지극히 유아적, 감성적 반응일 뿐 논리적 태도는 못된다. 시중에 유행하는 표현을 따르자면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이중 잣대에 불과하다.

국민들의 판단이 어떠한가와 별도로 정치 일선에 선 이들의 태도로는 결코 믿음직스럽지 못하다. 결국은 자충수가 될 위험성이 크다.

이번 개헌 논의가 지금의 흐름에 제동을 거는 효과는 분명 있을 터이지만 노 대통령이 제안한 개헌안이 통과, 발표될 경우 정치권 최대의 수혜자는 차기 대통령이 될 터이니 집권을 예상하고 있는 정당 입장에서 “내가 당선돼 하게 내버려두라”고 굳이 나설 이유도 없지 않겠나 싶은데 어쨌든 현재 지지도 1, 2위를 달리는 예비주자들을 둔 한나라당이 반대를 하고 나섰으니 이번 개헌안의 운명이 그리 순탄해 보이지는 않는다.

관전하는 국민들 입장에서 보자면 개헌안을 받아들이는 이들의 다양한 표정을 관전하는 재미가 적잖다.

한나라당 대선 주자들 사이에도 반응에 온도차가 있다는 보도들이다. 가장 강력하게 반대하고 나선 이는 박근혜 후보라고 한다. ‘참 나쁜 대통령’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격한 반응을 보여 화제가 됐다. 이번 노 대통령의 개헌안은 실상 박근혜 후보가 그간 주장해온 것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어서 그 반응이 흥미롭다. 차이가 있다면 ‘중임제’를 ‘연임제’로 바꿔 법률적 정의를 보다 명확히 한 것의 차이일 뿐이다.

현재 지지율 1위의 이명박 의원은 일단 당론과 맞춰 반대의사를 보였다지만 상당히 유보적인 입장으로 보인다. 지지율 경쟁의 의미는 적지만 일단 당내 개혁세력의 선두주자를 자처하는 원희룡 후보의 경우 ‘찬성’ 의사를 보인 것도 눈길을 끈다.

민주당은 원칙적 찬성, 민노당은 정략적 제안으로 보인다며 반대의 입장을 보인 것도 재미있다. 통합을 대비하던 민주당이 그러한 것도 관심을 끌지만 정략적 제안으로 보여 반대한다는 민노당의 태도야말로 매우 정략적인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개헌은 해야 하지만 지금 정권이 하면 안 된다는 주장은 그 수혜자가 현 정권일 수밖에 없다는 전제가 성립될 때 펼 수 있는 논리다. 다만 식물인간처럼 존재해야 할 정권이 뭔가 한 건 올리는 것 같아 불쾌하다는 식의 반대는 제안된 의제의 정합성을 검증할 능력이 없다고 이실직고 하는 태도처럼 보인다. 여론조사 결과가 당장의 개헌에 반대한다는 것만 믿고 필요한 개헌이라고 믿으면서도 시기를 늦추려 하다가는 스스로 정치적 신뢰를 잃을 위험이 더 크지 않을까.

그래도 고집하고 가겠다면 누가 말릴까마는 차기 정권을 쥘 그 누군가는 땅을 치며 후회하지 않을지 참 궁금하다.

홍승희 <편집국장>

이 시간 주요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