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액권 발행, 장단점 따져 신중기해야"
"고액권 발행, 장단점 따져 신중기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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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정치권, 정부 '합창'
정부와 정치권이 고액권 발행에 사실상 합의함에 따라 고액권 화폐 발행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이다.
그렇더라도 물리적으로 볼때, 빨라야 2008년말경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1973년 1만원권이 도입된 이후 35년 만에 새 단위의 화폐가 나오게 되는 셈이다.
물론 고액권이라는 지칭에는 10만원권만 있는 것은 아니다. 5만원권도 포함된다. 
정부와 정치권이 고액권발행에 긍정적 입장으로 돌아선 데는 현재의 최고액권인 1만원권은 세계 10대 경제대국이라는 위상과 금융거래 규모 등을 감안할 때 구매력 가치가 너무 낮다는데 견해가 일치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1만원권이 도입된 1973년 이후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는 140배 이상 성장한 반면 소비자물가는 이 기간 중 12배 이상 올라 화폐가치가 떨어졌다. 지금의 1만원권 가치는 1973년 물가로 환산할 경우 800원에 불과하고, 10만원권을 도입하더라도 1973년의 1만원권에 비해서는 구매력 가치가 낮다는 지적이다. 당시 1만원권은 지금의 12만원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상거래 편의성 제고
아무튼 고액권의 등장은 경제뿐아니라 사회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상거래상의 편의성이 높아진다. 이 점이 고액권이 필요한 가장 큰 이유다.
현재의 경제규모나 화폐 가치등을 감안할 때 5만원권이나 10만원권의 등장은 늦은 감이 있을 정도이다.역설적으로 현재 1만원권 또는 5천원권이 없으면 얼마나 불편할까를 생각해 보면 10만원권의 필요성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때문에, 10만원권이 등장하면 10만원짜리 자기앞수표는 거의 무용지물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은 어쩌다 주머니속에 달랑 10만원권 수표만 지니고 있다가 구멍가게에서 물건을 사거나 택시요금을 계산하다가 낭패를 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수표를 현금화하려고 발행은행을 찾아야하는 번거로움도 있고, 사용이 가능한 장소라하더라도 뒷면에 서명을 해야하는 불편이 있었다.
이 모든 불편함이 고액권 발행의 필요성이고, 때문에 고액권이 등장하면 그 만큼 편해지고 자기앞 수표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될 것이 뻔하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화폐대용지급수단의 확대가 현금수요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는 10만원권이 도입될 경우 전체 화폐발행 잔액 중 75%를 차지할 정도로 잠재수요가 큰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현재 최고액권인 1만원권 비중이 92%에서 21%로 낮아질 정도로 활발하게 쓰일 것이라고도 예상하고 있다.

<>'사과상자'가 '작은 가방'으로 변질된다면 
그렇다면 이렇게 편하고 좋은 고액권 발행이 왜 이제서야 실현가능해 졌을까.
좋은 면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부작용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고액권의 등장은 상거래의 편리함이라는 잇점만 있는게 아니라, 나쁘게 쓰일 경우 뇌물주고 받기의 편리함도 수반한다. 우리가 흔히 정치권의 비리등에서 큰 뇌물이 오고갈 때 '사과상자'가 등장하는 이유가 1만원권 현찰의 안정성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사과상자가 위장용은 결코 아닌 것이다. 들키지 않고 현찰로 수억, 수십억을 뇌물로 주려면 불가피하기에 벌어지는 모습들인 것이다.
그런데 만약 10만원권 현찰(화폐)가 등장할 경우 '사과상자'는 필요 없고 작은 가방이면 족하다.
물론, 우리사회가 과거보다 많이 투명해 졌고, 뇌물도 줄어 들었다. 하지만,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니다. 더욱이 고액권의 등장이 잠자던 뇌물주고받기의 유혹을 일깨우는 계기가 될 개연성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 많은 장점에도 불구 과거에도 숱하게 거론만 됐지, 고액권 발행이 실현되지 못한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상거래 관행의 변화에 역행한다는 지적도 있다.
신용 거래가 늘어나고 전자금융이 확대되는 추세에 반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은행이 조사한 지난해 지급결제수단 이용실태를 보면 개인고객들은 물품 및 서비스를 구매하는 지급수단으로 신용카드(28.2%)를 현금(26.1%)보다 많이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서 부작용이 우려되는 고액권을 발행해야하느냐는 반론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돈의 가치에 대한 의식변화로 인해 물가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고액권 발행의 부정적 측면중 하나다. 고액권이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실제로 세뱃돈이나 경조사비등의 단위가 커질 가능성이 높아지는 등 돈의 씀씀이가 헤퍼질 개연성이 높다.
때문에, 만약 정부가 고액권 발행 입장을 굳힐 생각이라면, 이같은 부작용에 대한 대책이나 홍보등 많은 준비가 선행돼야할 것이라는게 중론이다.
 
남지연 기자 lamanua@seoulf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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