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의 '핵' CP시장 '자료가 없다'
금융위기의 '핵' CP시장 '자료가 없다'
  • 서울금융신문사
  • 승인 2003.05.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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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투자가마저 정확한 정보없이 투자
지난 주 참여연대와 금감원은 하반기 카드사 만기상환 금액을 놓고 신경전을 벌였다. 참여연대의 25조8천억원 추정에 대해 금감원이 17조6천억원이라고 반박하고 나선 것. 보도에 따르면 이 금감원 관계자는 “6월 이전에 만기연장된 일부 CP(기업어음)를 포함하더라도 하반기에 카드사가 갚을 돈은 20조원에도 못미칠 것”이라고 덧붙였다고 한다.

그러면 도대체 정확한 만기상환액은 얼마라는 말인가. 17조원과 20조원, 25조원…. 아무리 추정치라고 하더라도 숫자 차이가 너무 크다. 카드사 발행 채권 규모가 얼마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 있긴 한 걸까 의심스럽기까지 한 상황이다.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이 전개되는 것은 다름 아닌 채권시장, 그 중에서도 CP시장의 정보 투명성이 미흡하기 때문이다.

모든 시장 참여자들은 CP 발행액을 추정치에만 의존하고 있어 만기상환액도 발표하는 기관마다 제각각이다. 금융감독원은 정확한 데이터를 갖고 있지만 현재까지는 전혀 시장에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채권 전문가들은 CP시장 자료라고는 한국은행 분기별 자금순환표와 월간 금융시장동향에 기재된 몇 줄이 사실상 공개된 정보의 전부라고 지적한다. 발행기업의 CP 거래상황에 대한 정보는 사업보고서와 감사보고서에 관련 정보가 기재되지만 역시 피상적인 수준에 불과하다. 이런 환경에서 신용평가회사는 카드사들의 신용등급을 매기고 있고, 은행 및 기관투자가들은 CP를 매입하고 있는 형편이다.

더욱이 기관 투자가들은 카드사들이 얼마만큼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지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금감원으로부터 신규 발행한 카드채를 매입할 것을 종용받고 있다. 금감원은 지난 2일 “증권사 창구에서 카드채 매출을 확대하고 투신사로 하여금 카드채 편입을 확대하도록 유도하겠다”는 카드사 신용 보완책을 발표했다.

예측불가능한 상황에서의 거래는 투자라기보다 투기에 가깝다. 어떻게 보면 정부가 투기를 조장하고 있는 셈이다.

국내 기업들은 발행의 편리성, 금리 이점 등으로 CP를 단기자금 운용수단으로 즐겨 활용하고 있다.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CP 거래내역이 시장에 잘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CP는 비우량기업의 자금조달 수단으로 각광받아 왔다. 그러나 CP는 유동성 위기가 닥치면 복(福)이 화(禍)로 돌변한다. 카드사들 뿐만 아니라 최근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SK 계열사들도 CP 상환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SK케미컬은 CP 상환을 위해 직원들 월급을 임시 변통하기도 했다.

은행권 한 인사는 은행의 카드사 지원에 대해 “자료 공개없이 무조건 정부만 믿고 돈을 내놓으라는데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할 상황이었다”며 “하반기에는 상황이 좋아질 거라는 데 근거가 부족한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또한 “과거 경험에서도 정부의 종용으로 부실기업에 대출해 줘서 회수된 적이 거의 없다”며 정부의 말보다 시장의 정확한 데이터에 근거한 투자가 절실함을 강조했다.

시장 참여자들은 CP시장의 정보 투명성을 높일 것을 주문하고 있다. 모 증권사 관계자는 “CP시장 규모가 회사채 시장과 거의 맞먹는데도 공개자료를 통해 CP거래 규모를 파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며 정보 공유의 확대를 주장했다. 또한 “정보 투명성없이는 시장의 신뢰 회복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금융시장 불안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선 공적자금의 재조성 및 투입이 검토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가 이 주장을 논리적으로 반박하기 위해서라도 정보 공개는 필수라는 게 시장 참여자들의 지적이다.

정부의 일방적인 시장 끌고가기는 참여정부의 명제와도 어긋난다.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야 말로 관치금융을 실질적으로 종식시키고 장기적으로는 시장의 안정성을 높이는 방법이다. 대외신인도 역시 그런 정부의 태도에 크게 영향을 받을 것이다.

정부는 일방적으로 시장을 끌고가려 하기보다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시장참여자들의 신뢰에 바탕을 둔 협조를 구하는 방식의 새로운 정책 입안, 시행 자세를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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