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저금리 전략] 보험시장 대격변…'뉴 노멀'에서 길을 찾다
[저성장·저금리 전략] 보험시장 대격변…'뉴 노멀'에서 길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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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김희정기자] 2000년대 이후 국내 보험산업은 급속한 성장세를 지속하며 세계 8위 보험시장으로 자리 잡았으나 저성장·저금리·고령화로 대변되는 '뉴 노멀(New-normal)'시대의 새로운 질서는 보험사들의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여기에 최근 금융당국은 '보험산업 경쟁력 강화 로드맵'을 발표, 상품 개발·가격 책정에서 보험사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해 질적 경쟁을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그동안 규제 일변도의 보험시장이 본격적인 '무한경쟁' 시대로 진입하는 것이다.

이에 보험사들도 '고객의 위험 대비'라는 본연의 임무를 바탕으로 지속성장을 위한 돌파구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그동안 높은 손해율 등을 이유로 등한시해왔던 유병자 및 고령층 고객의 편입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도 같은 일환으로 해석된다.

◆저성장·저금리 속 보험산업 = 저성장 및 이에 따른 저금리 기조 장기화는 보험시장을 위축시키고, 보험사의 운용자산수익률 저하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보험업계의 전반적인 성장성, 수익성, 건전성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특히 저성장에 따른 가계소득 감소는 신규 보험계약을 저해함은 물론, 실효·해약 보험계약을 높인다는 점에서 심각한 위험 요인이다. 계속되는 저금리 기조 역시 보험사들의 고질적인 이차역마진 심화를 불러오는 부정적 요인이다.

실제로 지난 2014년 말 기준 보험사의 운용자산이익률(연 4.4%)은 보험료적립금(보험부채) 적립이율(연 4.8%)보다 낮아 0.4%p 역마진 상태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극복하지 못한 보험사들은 최악의 경우 파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가까운 일본에서는 1997년 이후 7개 생명보험사가 지속적인 이차역마진 확대로 파산했다. 미국의 경우 총 207개의 보험사가 1969~1991년 사이 문을 닫았는데 이 중 80% 이상이 보험예정이율 리스크 및 투자 리스크 조정 실패에 기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맥락에서 '뉴 노멀 시대'는 이제 피할 수 없는 시장 흐름인 만큼 그에 부합한 경영전략 추진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수익성이 하락하고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는 것은 일시적 현상이라기보다 저성장·저금리 고착화, 인구구조 변화, 금융 규제 등 중장기적인 요인에 기인한다는 판단에서다.

과거 고성장 시기의 경영전략은 양적인 측면에 초점이 맞춰졌다. 당시 보험사들은 리스크 관리를 중점에 둔 질적 성장은 사실상 배제하고 기형적인 '덩치 키우기'에 집중했고 이는 뉴 노멀 시대의 경영 지속성을 위협하는 부담요소로 발전했다.

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경영전략 목표를 장기이익이나 질적 가치 제고로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김창수 삼성생명 사장도 올 초 신년사를 통해 '질(質)과 가치중심 경영 정착'과 '경영의 질을 담보한 성과 창출'을 가장 먼저 당부했다. 김 사장은 "질 경영과 가치중심 경영은 고객 가치와 회사의 질적 성장을 함께 지향하는 것"이라며 "이는 저금리, 저성장을 극복하는 유일한 생존전략이자 경쟁사와 차별화된 성장전략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저성장 고착화 및 금융개혁은 대형사에 비해 중·소형사에 상대적으로 어려운 경영환경을 제공할 것이라는 우려섞인 전망도 있다. 때문에 중·소형 보험사는 자신의 특성에 부합하는 차별화된 경쟁력 제고 방안을 강구하는 한편, 인수합병(M&A)으로 규모의 열세를 극복하는 것도 한 방편으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 그래픽=서울파이낸스

◆고령화 시대, 보험사 대응전략 =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고령화' 역시 보험시장에 또다른 숙제를 안겨주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출생자 수가 1971년까지 100만 시대에서 2002년 이후 그 절반 이하로 급격히 감소했다. 반면 65세 이상 고령인구의 비중은 1994년 이미 7%를 초과해 고령화사회에 진입했고, 2018년에는 14%로 급격히 증가해 고령사회, 2026년에는 20%를 넘어서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학자 월트 로스토우는 "인구 고령화 문제가 21세기 가장 중요한 골치덩이가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상당수 미래학자들도 21세기 가장 큰 위험으로 핵무기가 아닌 고령화를 꼽고 있을 만큼 고령화는 이제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에 업계는 인구 고령화가 보험산업에 최대 악재로 등장할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고령화는 장기보험의 주요 수요층인 3040대 인구의 감소 및 가계부담을 늘리는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 1994년 고령사회로 접어든 일본의 90년대 보험산업 성장률은 매우 저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보험사들의 고령층 기피 현상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고령자의 경우 위험률이 급격히 증가할 뿐만아니라 만성 질환환자가 많아 위험률 측정이 까다롭다. 하지만 반대로 고령화의 급속한 진전과 장수리스크 증가는 잠재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보험수요가 무궁무진할 수 있다는 반증(反證)이기도 하다.

더욱이 지난해 생명보험협회가 발표한 '제14차 생명보험 성향조사'를 보면 향후 고령층이 새로운 시장 주체로 등장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가구주(主)의 연령대가 40대, 50대, 60세 이상인 경우 보험 가입률은 전회차 조사 년도인 2012년에 비해 상승했다. 특히 60세 이상 가입률 증가가 두드러졌는데 노후 질병에 대한 불안이 커 질병보험 가입건수가 증가한 것이 주효했다.

고령층이 향후 시장의 '큰 손'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은 향후 가입을 원하는 생명보험상품 조사 결과에서도 나타난다. 연금보험(33.5%)과 장기간병보험(29.6%)을 가장 선호했던 것이다. 급속한 기대수명 연장에 따른 노후의 소득 및 의료비 보장 등 장수리스크에 대비하기 위한 보험상품으로 소비자의 관심이 집중된 것으로 분석된다.

보험개발원의 '생명보험통계자료집'에 따르면 지난 2014년 기준 연금보험상품의 보유계약 중 20~30세의 연평균 증가율 비중은 줄어들거나 답보상태에 있지만 60세 이상은 오히려 늘어났고(14.2%), 70세 이상은 가장 큰 증가율(25.9%)을 보였다.

국내 보험사들 역시 이같은 추세를 직접 체감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업계 최초로 고령자·유병자를 대상으로 한 보험을 출시한 현대해상은 지난해 말까지 약 9만건, 70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달 들어선 삼성화재 (간편하게건강하게), KB손해보험(KB신간편가입건강보험), 흥국화재 (행복든든간편가입보장보험)가 줄줄이 간편심사 보험을 출시하며 시장에 뛰어 들었다.

기존의 고령자·유병자들은 건강보험은 병력이 있으면 복잡한 서류심사를 거쳐 보험료를 할증해 가입하거나 아예 가입이 거절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 보험사들은 3가지 조건(△5년내 암진단 또는 암치료 여부 △2년내 입원 또는 수술 여부 △3개월내 의사의 입원·수술 등 검사소견 여부)에 해당하지 않으면 서류제출 및 건강진단 없이 가입가능한 간편심사 보험을 출시, 병력이나 나이를 이유로 보험에 들기 어려웠던 사람에게 가입 문턱을 낮췄다.

잇단 고령자·유병자 보험 출시 러쉬는 '뉴 노멀'이라는 새로운 환경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이자, 더 이상 과거와 동일한 방식으로는 성장하기 어렵다는 보험사들의 절박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환경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함으로써 경쟁사들보다 앞서가겠다는 의도다.

그동안 보험산업에 쉽지 않은 숙제로만 인식돼온 '뉴노멀 시대'는 위기임과 동시에 준비된 보험사들에게는 새로운 '기회의 장'을 열어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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