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양치기 세일'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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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김태희기자] '과하면 독이 된다'는 말이 있다.

국내 유통업체들이 즐겨 써먹는 정기세일, 시즌세일, 시즌오프 얘기다. 연말·신년 맞이 세일을 하고 크리스마스, 발렌타인데이, 가정의달, 추석 등 이슈가 있을 때마다 세일 행사는 반복된다.

특별한 이슈가 없을 때는 황사용품 기획전, 웨딩 프로모션 등 온갖 아이디어를 동원해 이벤트를 만들어내니 '연중 세일'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온라인마켓은 더 가관이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소비자들에게 노출되는 까닭에 사시사철 고객 유치 활동이 치열하다. 특히 온라인쇼퍼, 모바일 '엄지족' 수가 증가하면서 과열된 할인 경쟁은 극을 향하고 있다.

문제는 과도한 할인행사가 오히려 소비자들의 혼란만 부추기고 있다는 점이다.

10% 할인은 기본 공식이다. 이 마켓 저 마켓을 돌아다녀도 할인가가 아닌 곳이 없다. 가격의 올바른 비교 대상이 없다 보니 소비자들은 쏟아지는 할인가격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게 됐다.

'할인으로 포장된 꼼수'가 아니냐는 비아냥 섞인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소비자들은 대폭 할인된 가격에 구입했지만 '싸게 잘 샀다'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딜레마에 빠졌다.

결국 소비자들로서는 할인행사를 위해 정가를 의도적으로 높게 책정하는 것 아니냐는 합리적 의구심을 품게 된다.

지난 10월 진행된 한국형 블랙프라이데이는 이같은 의구심에 쐐기를 박기도 했다. 평소 10% 할인가 5000원에 판매되는 제품을 이벤트 기간에는 정가를 9000원으로 높여 45% 할인(4900원)에 판매한 사례가 발견된 것.

최저할인 '미끼상품'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27일 11번가는 '진짜 블랙프라이데이' 기획전을 통해 15~20만원 상당의 나이키 조던 운동화를 특별가 5만9800원에 판매한다고 광고했다. 1만원의 쿠폰까지 사용할 수 있는 상품이었다.

하지만 배너를 클릭해 들어가 보니 제품 구매 화면에서 옵션을 선택해야 했다. 해당 옵션들은 기본 11만원에서 최고 15만원의 가격이 추가되는 구조였다. '진짜 할인'을 원했던 소비자들로서는 허탈감이 클 수밖에 없다.

현재 국내 유통업계에서 세일, 이벤트, 행사, 기획전, 프로모션, 할인은 모두 같은 의미로 통용된다. 그러나 똑똑한 소비자들은 더 이상 업체들의 눈속임 마케팅에 휘둘리지 않는다. 국내외 가격을 비교하기 위해 해외 쇼핑몰까지 검색하기 시작했다.

'늑대가 나타났다'를 연신 외치던 양치기 소년의 진실이 끝내 사람들에게 묻힌 것처럼, 유통업계가 외치는 '진짜 세일'에 대한 소비자들이 불신도 싹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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