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활성화와 고분양가 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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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정부는 가장 손쉬운 경기부양책으로 부동산경기 활성화를 선택하곤 했다. 덕분에 부동산 투기가 우리 사회의 빈부 격차를 컴퍼스 다리 벌리듯 벌려놓는 역할을 했다. 그래서 갈수록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거리는 더 멀어지기만 한다.

그동안 부동산 투기를 잘 한 사람들은 지금 넘쳐나는 자금을 어디에 투자할 것인지로 골머리를 앓는다. 반면 집은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일 뿐이라는 교과서적 원칙에 충실했던 사람들은 조기퇴직 바람과 함께 참으로 불안한 노후를 지내게 된 꼴이다.

그런데 지금은 경기침체 속에서도 아파트 분양가가 널을 뛴다. 그로 인해 정부는 전가의 보도처럼 써오던 대표적인 경기부양책을 쓸 수 없게 됐다. 오히려 고공행진 중인 아파트 가격을 잡기 위해 금융수단을 쓸까, 재정수단을 쓸까를 고민하는 처지가 됐다.

역대 정권의 배설물들을 고스란히 뒤집어 쓴 꼴이지만 한편으로는 지금 선진국 문턱을 넘기 위한 마지막 숨고르기 단계에서 불가피하게 거쳐야 할 관문이라는 긍정적인 해석을 내려 볼 여지도 있다. 언제까지 경기대책이 부동산에만 의존할 수는 없을 테니까.

어쨌든 지금 정부는 부동산 가격이 거품을 몰아올까봐 전전긍긍하며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중이다. 하지만 잇단 보선 참패를 겪은 여당은 빨리 경기부양책을 쓰라고 정부를 압박한다. 물론 과거와 같은 부동산 경기 활성화를 요구하지는 못하고 있다. 오히려 8.31대책을 보다
엄정하게 집행해 조세정책을 통한 수요 억제와 공급확대 정책을 적극적으로 병행하라고 주문한다. 그와 아울러 기업에 대한 투자 규제가 강화돼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혀 재벌체제의 해체를 위해 정부가 힘겹게 밟아온 수순을 사실상 되돌리라고 한다.

이런 요구들은 남들 안하는 데 여당이 혼자 내는 목소리가 아니다. 많은 언론들이 거듭 요구하는 것들이다. 반복적으로 듣다보니 듣기에 그럴싸하다. 그러니 이 요구 속에 담겨있는 함정이 잘 드러나질 않는다.

부동산가격 안정을 위한 주택 공급확대 정책이 성공하려면 분양이 잘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려면 기존 부동산 거래가 활발해 추가 수요가 발생해야 한다. 그러자면 또 차익에 대한 기대심리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미분양 사태를 내지 않고 정상적인 분양이 이루어진다.

실수요자들에게 주택을 공급하면 된다는 소박한 생각은 이익을 내야하는 건설업체들의 열의를 불러일으키기 어렵다. 현실적으로 주택이 간절히 필요한 사람들은 이미 오를 대로 오른 주택을 살만한 경제적 능력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실수요자만 붙어서는 미분양 사태를 면하기 힘들다. 건설업체들이 이런 상황을 뻔히 보면서 뛰어들 생각이 날 리 없다.

그래서 금융지원을 확대하면 투기꾼들이 더 앞장서서 잘 활용한다. 투기꾼 날뛰는 걸 막자고 주택여신을 조이면 삽시간에 분양 열기가 죽고 공급확대 정책은 허사가 된다.
가난한 실수요자들에게 신규 아파트 분양의 기회를 늘려주려면 전세비 만으로 입주한 후에 나머지 잔금은 장기간에 걸쳐 갚아나갈 수 있어야 한다. 천상 금융지원을 늘려야 한다. 그러자니 또 투기꾼 난장만 열어주는 꼴이다.

대안으로 모기지론이 거론되지만 이 마저도 정말 투기꾼들을 효과적으로 따돌릴 수 있을지, 더 임상실험을 해봐야 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 염려스럽다. 그만큼 투기꾼들은 세력을 이루고 정책입안자들 머리 위에서 논다. 아니, 좀 불온한 발상을 털어놓자면 정책입안자들이 사적으로 투기꾼들에게 에워싸인 것은 아닌가 의심 들 때도 종종 있다.

우리 사회는 지금 양극화가 최대 현안이라고 너나없이 지적한다. 하지만 지금의 경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대책이라고 내놓는 것들은 하나같이 양극화 해소법으로부터 멀어지는 길들이다. 거기다 지자체들-좀 더 솔직해지자면 서울특별시가 앞장서서 아파트 분양가를 대폭 끌어올렸다. 공영개발 아파트가 이 지경이니 그 이후의 풍경은 뻔하다. 덕분에 간신히 잠재웠는가 싶던 아파트 시세가 또다시 널뛴다.
그러면서 우리는 서로 뻔히 속 보이는 염려들을 늘어놓는다. 양극화가 걱정이라고.

홍승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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