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병든 사회가 잉태한 또다른 '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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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구변경기자]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유통업계의 뿌리깊은 '갑질'에 대해 칼을 빼들었다. 그간 지속돼온 갑을 논란에도 불구하고 유통업체와 협력업체 간 불공정거래가 여전히 만연해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공정위는 최근 편의점업종의 표준가맹계약서를 제정하고, 위약금·광고비 등의 내용을 대대적으로 개선했다. 본사의 갑질로 인한 가맹점의 불이익을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또 다음달에는 대형마트 3사(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의 △대금공제 △부당한 경제적 이익 수취 △납품업자 종업원 파견 강요 등의 혐의를 포착하고 철퇴를 놓을 예정이다.

지난 2013년 남양유업의 영업사원이 대리점주에게 욕설을 퍼붓고 횡포를 부렸던 갑질 사태 이후 우리 사회 곳곳에 숨어있던 병폐는 지속적으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갑을 논란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그만큼 높아졌다.

과거에는 '모르쇠'로 일관했던 기업들도 나름의 대응 매뉴얼을 갖춘 듯 하다. 진정성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문제가 생기면 발빠르게 잘못을 시인하고 고개 숙이는 쪽을 택한 것이다.

이처럼 기업들의 불공정 관행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이전보다 크게 높아졌고, 또 개선되는 분위기지만 우리사회 저변에 확산돼 있는 천박한 특권의식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모습이다.

지난달 신세계백화점 인천점 한 주얼리브랜드 매장에서 일어난 '무릎 사과' 영상은 삽시간에 일파만파로 번지며 논란이 확산됐다. 영상에는 한 여성고객이 무상수리 요구에 대한 응대에 불만을 품고, 무릎을 꿇은 여성 점원 두명을 향해 고성을 지르는 모습이 담겼다.

지난해 12월에는 현대백화점 부천 중동점 지하에서 모녀 고객이 아르바이트 주차 담당 직원에게 30분 동안 무릎을 꿇게 한 뒤 폭언을 하고 뺨을 때린 일도 있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고용노동부가 지난 2일 이같은 '감정노동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법안을 마련해 업무상 질병 인정기준에 '적응장애'와 '우울병'이 추가됐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이들은 정신적 충격과 스트레스를 받아 우울병이 생기면 산업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한편으론 병들고 있는 우리사회의 민낯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산재 인정항목에 우울병이 등장한 것은 그만큼 우리사회 감정노동자들의 피로감이 커지고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최근 한 외식업체는 직원들을 상대로 갑질을 하는 고객은 받지 않겠다는 공문을 내걸어 화제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물론 반가운 소식이지만 어찌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 화젯거리가 되는 일을 더이상 목도하는 일이 없었음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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