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줄이 마르는 이유
돈 줄이 마르는 이유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금 우리 경제의 최대 현안은 양극화라는 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한다. 그러나 그 양극화 해소를 위한 처방에 대해서는 또한 양 극단에 선 사람들끼리 핏대를 올린다.
일단 악순환의 고리가 완성되기 전에 고리 부분을 잘라내든 양 끝을 끌어당겨 펴든 대책을 세워야 하는 데 그 고리가 내 밥 줄, 내 돈주머니라면 그 누구도 양보할 뜻이 없기 때문일 터이다. 그러다보니 서로 저쪽이 양보해야 한다고 악다구니를 쓴다.

아무리 좋게 봐도 잘되는 집안 꼴은 아니다. 같이 망하자고 악쓰는 게 아니라면 이쯤에서 적정한 사회적 합의가 도출돼야 마땅하다. 문제가 된 현상은 모두 동의한다면 이제 원인에 대한 공감이 필요하다.
한 달 전 쯤 한국은행이 발표했던 자료로 보면 올 2.4분기 설비 투자는 총 21조7,318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7%가 늘었다. 상반기 전체는 41조2,356억 원에 달한다. 이처럼 기업들의 설비투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는 데 중소기업들 대다수는 운영자금 벌기도 빠듯하다고 아우성이다.

내막을 보면 41조를 넘는 설비투자의 70%를 150개 대기업이 담당했다고 한다. 이들 대기업들은 쌓아둔 돈을 풀어 설비투자에 나선 것이라고도 한다. 한쪽에선 당장 쓸 돈이 없어 쩔쩔매고 한쪽에선 쌓아뒀던 돈을 풀어 설비투자를 한다.... 얼핏 봐도 불공평해 보인다. 그렇다고 돈 많은 회사에 삿대질할 근거도 찾기 어려우니 돈 줄 마른 기업 입장에선 더 속이 터질 일이다.

대기업들이 자기 돈으로 투자에 나서고 중소기업은 자금이 없어 쩔쩔 매는 데 은행을 비롯한 금융사들은 그동안 뭘 하고 있었을까. 2.4분기 중 회사채등 증권 발행으로 끌어 쓴 돈이 49조6,530억 원으로 전분기보다 13조1,000억 이상 더 늘었다고 한다. 대기업 투자액 28조5,000억 원의 90% 이상이 사내 유보금이라면 최소한 50조에 가까운 증권 발행액의 절반은 설비투자와 관계없이 쓰였다는 얘기이겠다. 결국 지금 중소기업 다수는 빚으로 빚을 막아가는 중인게다.

물론 현재는 빚으로 연명하는 기업이라도 곧 ‘대박’이 터질 비전이 있는 기업도 있기야 하겠지만 적잖은 수는 안 된 말이지만 하루라도 빨리 접는 게 더 나은 한계기업일 성 싶다. 이미 치솟는 유가로 수익성을 기대하기 어려워진 섬유·화학업종이나 더 이상 가격을 끌어내리기도 힘든 저가생산업체들이라면 한숨 돌리며 다시 냉정한 재무제표를 작성해봐야 한다. 국내 시장에 비해 과당경쟁이 극심한 업종들이라면 그 중 몇 %가 살아남을 수 있는지, 나는 그 몇 % 안에 들만한 특별한 노하우를 갖고 있는지 등등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국가 경제를 자연 하천으로 본다면 이들 기업은 실상 건천이다. 비가 오면 물이 좀 흐르다가 비만 그치면 바짝 마르는 건천에는 바가지 물을 아무리 퍼 부어봐야 흔적도 남기 어렵다. 지금 한계기업들을 향해 정부가 지원금을 퍼부어봐야 건천에 바가지로 물 퍼 나르기 꼴 밖에 안 된다. 매우 야박한 말 같지만 결실을 기대할 수 없는 사회적 자원의 낭비일 뿐이다. 이는 사회복지비용 지출과도 또 다르다. 사회복지비용은 단지 필요한 곳에 사용되는 것이지 낭비가 아니다. 그러나 한계기업에 대한 자금지원은 금융구조의 왜곡을 가져오며 불필요한 생산물을 양산하는 낭비적 구조가 될 뿐이다.

이제는 사회가 좀 더 냉정하게 앞으로의 산업구조를 전망하고 그 위에서 사회적 자원을 배분을 검토해봐야 한다. 설마하니 기업 지원을 적선하듯 베푼다는 발상을 갖고 하지는 않을 것이니 좀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서민 지원하듯 한계기업을 지원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게 생긴 여유자금은 미래 산업으로서 전망이 확실하지만 당장의 경영상 애로가 큰 기업에 확실하게 지원해야 마땅하다. 가뭄에 양동이 물 부어주듯 찔끔거리지 말고.

지금 우리 사회는 마치 개혁 때문에 다 망한 듯 떠드는 목청으로 가득 찼다. 그러나 개혁은 제대로 시동이나 걸어 본 건지 의심스럽다. 지금 진실로 필요한 개혁은 경제부문과 사회보장부문을 명백하게 구분하는 일이어야 할 것 같다.

홍승희 <편집국장>

이 시간 주요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