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력도 학원에서 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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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홍승희기자] “한국인은 들쥐와 같다. 앞의 들쥐가 벼랑끝을 향해 달리면 뒤따르는 들쥐들은 방향도 모르고 따라 달려간다. 한국인들의 행동이 그와 같다.” 예전 어느 주한 미국대사가 한 이 말 한마디로 국내 여론이 들끓은 적이 있다. 정치적 야만이 극성을 보이던 시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외교적 수사’라는 말을 익히 알고 있는 국민들 입장에서 미국의 한국을 보는 시각이 여실히 드러난 그 한마디에 분노했지만 내심으로는 찔끔한 이들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였다.

벌써 몇 십 년 전 일이다. 미국이 한국을 보는 시각에는 여전히 얕잡아 보지만 그 때보다는 좀 더 큰 구매자로 대하는 정도의 변화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우리 사회 속에는 여전히 남들이 다 하니까 따라가지 않으면 불안해서 스스로의 판단을 뒤로 미룬 채 쫓아가기 급급한 문화가 여전히 강력하다.

정부가 하는 미숙한 행태는 여전히 ‘우방국’을 내세우면서도 얕잡아 보여 실속을 다 빼앗기는 거래가 되풀이 되고 국민 대중은 스스로의 주인 됨을 내팽개치고 앞서 달리는 이의 발뒤꿈치 보며 따라 달리느라 늘 허덕인다. 정부도 국민도 스스로의 주인의식은 여전히 빈약한 것이다.

그러하다 보니 느느니 학부모들을 현혹하는 각종 학원들이다. 그런데 최근 한 TV프로그램을 보다가 사회가 하도 창의력을 외쳐대니 요즘 창의력 학원도 생겼다는 얘기를 들었다.

창의력마저 학원 수업을 통해 길러질 수 있다고 믿는다는 얘기에 실소를 금할 수 없었지만 해당 학원들의 프로그램이나 수업방식을 모르는 처지에 함부로 판단할 일은 아니라 싶어 그런 학원들에 대한 평가는 접어두기로 한다.

다만 뭐든지 학원을 통해 해결해야 마음이 편한 현대 한국인들의 심각한 의존증이 우려될 뿐이다. 정부는 뜻도 애매한 ‘창조경제’를 기치로 창의성 없는 정책만 양산하고 기업은 또 기업들대로 분위기에 편승해 직원들에게 창의적 아이디어를 내놓으라고 다그친다는데 지금처럼 학원의존증이 심각한 사회에서 자라난 세대가 과연 얼마나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필자가 어린 시절에는 지금처럼 상업화된 장난감은 구경하기 힘들었다. 학교 다녀오면 대충 숙제 먼저 하거나 아예 숙제도 뒤로 미루고 또래들끼리 어울려 놀기 바빴다. 기성품 장난감 따위 없어도 아이들은 끊임없이 놀 거리들을 발견하고 또 개발해내며 결코 심심할 틈이 없었다. 딱지는 직접 접어서 만들고 넓은 학교 운동장에서는 스스로 깎아 만든 막대기들을 들고 자치기를 했으며 여자 아이들은 공깃돌을 구하기 힘들면 깨져 나뒹구는 기왓장을 갈아 공깃돌로 사용했으며 깨진 사금파리도 훌륭한 장난감이 됐었다.

어린 손에 직접 만든 못난이 연들이 제대로 날지 못해도 아이들은 다음을 기약하며 결코 질려하지 않았다. 부모가 바쁜 아이들은 어린 동생을 들쳐 업은 채로 고무줄놀이든 사방치기든 각종 놀이에 빠지지 않았다.

그러다 종종 어른들에게 혼날 짓도 저질렀다. 겨우 열매 맺기 시작한 어린 호박이나 익지도 않은 열매들을 따서 놀다가 어른들에게 발각되면 혼쭐이 나곤 해도 그 때 뿐이었고 그런 어른들의 질책에 마음의 상처 따위를 입지도 않았다.

그렇게 놀다보면 아이들은 저절로 창의성을 발휘했다. 안타깝게도 당시에는 그런 아이들의 창의성을 받아줄 사회문화도 없었지만 아마 지금 아이들의 창의적인 놀이문화가 살아난다해도 여전히 우리 사회가 그런 아이들의 창의성을 평가할 줄 알까 싶다.

즐거움도 없는 일상 속에서 어린 시절 잘 키워놨던 창의성마저 시들어가는 데 창의성을 수용할 능력도 안 되는 사회가 자꾸 창의성을 요구하면 요구 당하는 쪽에서는 그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즐겁게 놀 시간적, 경제적, 정신적 여유가 없이 창의성이 발휘되길 기대하는 것을 옛말로는 아마도 연목구어(緣木求魚: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한다)라고 했던가.

쓸데없는 형식적 서류작업에 치이다보면 귀가할 때쯤은 탈진해서 수많은 직장인들은 창의성 대신 타성에 젖어들게 된다. 불필요한 결재서류부터 줄이고 거치적대는 행정절차들을 없애버리고 일하는 사람들의 자율적 결정권을 늘려주지도 않으면서 피곤에 쩌들었거나 눈치 단수만 높아진 직장인들에게서 창의성을 구한다고 얻어질 수 있는 게 아니다.

신바람 나는 직장 분위기에서는 절로 창의력이 샘솟기 마련이다. 그러자면 윗사람들부터 신나게 사는 법을 터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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