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기로에 선 박진회號 씨티은행
[기자수첩] 기로에 선 박진회號 씨티은행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파이낸스 이은선기자] 한국씨티은행 노사가 박진회 행장의 취임 1주년을 앞두고 지난해 임금단체협상을 뒤늦게 타결했다. 내년부터 임금피크제를 시행하는 방안에도 합의했지만, 은행권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퇴직금 누진제는 해결해야할 과제로 남아있다.

노조와 박 행장이 의견을 좁히는 데 걸린 시일은 무려 1년이다. 씨티은행 노조는 지난해 10월 말 당시 수석부행장이었던 박진회 행장이 하영구 전 행장의 후임으로 내정되자, 공개적으로 선임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출근 저지 농성을 단행했다.

이에 씨티그룹 서울지점 시절부터 역사를 함께한 박 행장은 노조에 섭섭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취임 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2001년부터 다동 본점에서 직원들과 같이 호흡해왔는데 출근을 저지한 것이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라며 "전시적인 노조 문화는 지양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그러면서도 박 행장은 "노조와 언제든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

그러나 이후 노사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올 3월 개최된 정기 주주총회에서는 노조와 박 행장의 언쟁으로 고성이 오가기도 했으며, 해외 용역비 관련 세무조사와 금융당국의 제재건에 대한 노조의 폭로가 잇따랐다.

그가 취임 일선에 내세운 '민원 제로 은행' 달성을 둘러싸고 갈등은 더 깊어졌다. 매일 직원별 민원 실적을 공시하는 등 성과에 압박을 느낀 영업점 직원들이 자비를 들여 상품권 등으로 고객 민원을 해결하는 등 부작용이 발생한 것이다. 입찰에서 밀린 수자원공사 출장소가 폐점되면서 노조는 지난달 영업점 카드 신규 발행 및 신규대출 금지 등의 쟁의행위까지 단행했다.

이례적으로 장기화된 노사 갈등의 배경에는 대규모 지점 통폐합과 명예 퇴직으로 상처받은 노조의 불안감, 조직의 지속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익성 회복이 시급했던 경영진의 조급함이 자리잡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씨티은행의 한 관계자는 "직원들 입장에서는 이제 막 안정화됐다고 생각했던 시점에 행장이 바뀌면서 또 다시 구조조정을 겪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컸다"고 전했다. 다른 관계자는 "글로벌 금융사들의 실적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경영진 입장에서는 본사에 눈에 띄는 변화를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결국 사측이 일면 양보하면서 양측은 짧지 않은 내홍을 딛고 화합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그간 부진을 면치 못해온 씨티은행의 당기순익도 상반기부터 경상 수준을 회복한 모습이다. 주변 대형 시중은행에 비해 가벼운 몸집과 외풍에 자유로운 외국계은행으로서의 특수성은 분명 씨티은행의 강점이다.   

다만 작금의 금융환경은 씨티은행의 선제적 인력감축 노력이 독이될지 약이될지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격변기에 접어들고 있다. 무려 1년만에 노사갈등을 봉합한 박진회호(號) 씨티은행이 '외국계 은행 잔혹사'의 꼬리표를 떼고 '작지만 강한' 은행으로 재도약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 시간 주요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