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 구제와 평화
가난 구제와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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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사람들은 “가난 구제는 나랏님도 못한다”며 체념했던 빈민 문제다. 세계의 최강의 부자나라들도 마땅한 해법을 찾지 못해 고민하는 그 빈민 문제를 세계 최빈국 방글라데시의 한 경제학자가 풀어나가며 한 갈래 해법을 보여줘 여러해 전부터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올해 노벨평화상을 받은 그라민 은행 유누스 총재가 그 주인공이다. 현재 서울평화상 수상을 위해 방한 중인 유누스 총재가 창시한 빈민 구제책은 마이크로 크레디트 제도. 무담보 소액대출을 근간으로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아름다운 재단이 ‘E-아름다운기금’을 조성해 재난 피해를 당한 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 가정 등을 대상으로 그라민 은행과 흡사한 소액대출을 하고 있지만 아직 상시적인 지원체계까지 갖추지는 못한 상태로 보인다. 현재는 신나는 조합과 사회연대은행이 마이크로 그레디트 사업에 나서 시작단계이긴 하지만 나름대로 대출 실적도 보이고 있다.

그라민 은행이 주목 받는 이유에는 무담보 무보증 대출임에도 불구하고 불량채권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도 포함돼 있다. 물론 동네 주민들이 연대책임을 지는 형태로 운영된다는 점도 상환불능이나 연체율이 적은 한 이유로 지적된다.

그러나 과거 우리 농촌에서 상호 연대보증 형태로 농비를 대출 받았던 농민들이 농사를 망치고 상환할 길이 막막해지면 일가족 한꺼번에 집도 논밭도 놔두고 야반도주했던 사례는 비일비재했다. 이웃간 연대책임제가 절대적 이유가 될 수는 없다는 얘기다.

그라민 은행은 단순히 돈만 빌려주는 대금업자가 아니다. 돈을 빌려 무슨 돈벌이를 할 것인지를 꼼꼼이 따져 물어 돈을 빌리는 빈민이 진정으로 자립할 수 있는 일인지를 미리 살펴본다고 한다. 빈민의 자립을 통한 빈곤 탈출이라는 목적이 뚜렷하고 그 목표에 맞춰 돈을 빌려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신용불량자가 나올 가능성이 낮다.

필자의 아는 친지 중에는 끼니를 잇기 어려운 극악한 가난을 경험하다 소위 말하는 일수놀이를 통해 다시 일어선 분이 있다. 그 분이 가난한 사람들, 보증해줄 그 무엇도 없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열심히 이자도 내고 원금도 빨리 갚기 위해 애쓰더라고 경험을 들려준다.

그 분의 밑천은 친구들이 미리 앞 번호에서 타도록 배려해준 곗돈이 전부였다. 지금으로 치자면 한 5백만 원 정도 됐던 듯싶다. 그 돈으로 더 형편이 어려운 시장 노점상들에게 돈을 빌려주곤 했다고 한다.

그 노점상들은 비싼 일수 이자마저 고맙게 감수하더라고 했다. 어느 금융기관에서도 돈을 빌릴 수 없는 처지에서 그나마 빌려주는 것만 고마워하더라는 것이다. 덕분에 그 친지분은 조그만 구멍가게나마 마련해 일수놀이를 그만둘 때까지 회수하지 못한 돈이나 이자를 제 때 못 받은 경우가 전혀 없었다고 한다.

그 분의 분석으로는 일단 노점상일망정 열심히 생업에 나선 사람들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신용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것 같더라고 봤다. 그들은 필요한 규모 이상의 빚을 지려고도 하지 않았고 그 빚을 하루라도 빨리 갚기 위해 더 허리띠를 졸라맬 줄 아는 사람들이었기에 돈놀이를 하는 사람이나 일수 돈을 쓴 사람 서로가 좋은 관계로 끝맺음을 할 수 있었던 셈이다.

유누스 총재의 방문을 받은 노무현 대통령이 마이크로 크레딧제도 활성화를 위해 휴면예금을 적극 활용하겠다고 밝힘으로써 빈곤층 소액대출 문제가 관심을 끌고 있는 이즈음이다. 어차피 특별한 룰 없이 묵혀 있거나 혹은 은행 임의적 기준에 의해 활용되는 휴면예금이라면 보다 조직적으로 활용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문제는 유누스 총재도 강조했지만 돈을 빌리는 빈민의 자립을 돕기 위한 목적을 분명히 하고 관리해야지 그렇지 못할 경우 빈민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문제를 악화시키기만 할 뿐이다. 빈민 자립이라는 명백한 목적과 그 목적에 맞는 적절한 관리가 없으면 가난을 벗어나도록 돕는 게 아니라 빈민들에게 부질없는 의존심만 키우며 '재앙'을 안겨줄 뿐이다.

홍승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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