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뻥튀기' 실력
정부의 '뻥튀기' 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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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홍승희기자] 어느 정부든 실적이나 새로운 정책의 예상효과를 부풀리고 싶어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현 정부의 뻥튀기 예산, 잔뜩 부풀려진 정책효과를 굳이 타박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이미 대형 미디어들을 장악하고 우호적인 기사들을 쏟아내게 만들 능력이 있는 현 정부의 과장된 발표들은 가끔 듣는 국민 입장에서 낯이 붉어지게 만든다. 오히려 국민들이 그런 정부 발표 앞에 더 부끄러워지고 겸손해지는 것이다.

이번 블랙프라이데이 행사 또한 그 중 하나다. 재고가 많이 쌓이면 경비부담이 커지는 유통업체들이 재고떨이를 위해 매년 정해진 시기에 행하는 대폭할인행사가 미국식 블랙프라이데이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그런 미국식 블랙프라이데이를 이름 그대로 베껴 쓴 행사를 정부가 나서서 독려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이미 각종 할인행사들이 거의 연중 내내 벌어지고 있다. 대다수의 소비자들은 할인되지 않는 물품은 잘 사지도 않을 만큼 할인이 일상화돼 있다.

유통업체들 또한 소위 '땡처리'라는 신조어까지 만들며 재고떨이를 부지런히 해온 나라다. 이미 바겐세일을 줄여서 세일이라는 한국식 영어가 어린 아이들 입에까지 붙어버린 판국이다.

이런 나라에서 갑자기 블랙프라이데이라니 듣기부터 의아한 일이었다. 그래도 정부가 앞장서서 기대감을 한껏 부추기니 뭔가 평소 각종 세일행사와는 다른가보다 싶었지만 시쳇말로 ‘혹시나가 역시나’였다고 볼멘소리들이 터져 나온다.

글쎄, 이 행사가 끝나고 나면 정부는 또 얼마나 대단한 소비실적이 나타났다고 발표할지 모르겠으나 실질적 소비 진작 효과는 크게 기대할 바가 아닐 성 싶다. 장기간 소비여력이 소진된 상태로 지내다보니 아예 소비의욕이 떨어져버린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크게 어필할 기획은 아니었던 게 아닌가 싶다.

평소 쇼핑을 직접 해보지 않은 이들이 책상머리에서 기획한 행사답게 소비자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정책이 또 하나 나타난 것에 그친 셈이다. 이런 정책 하나 내놓으면서 대통령이 몇 차례나 언급하게 만든 꼴이니 누가 가장 민망해할 일인지 생각해볼 일이다.

대통령이 면구스러운 처지가 되면 국민들도 낯부끄럽다. 그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든 아니든.

그런데 이런 뻥튀기가 안보문제에까지 나타나면 단지 부끄러움으로만 그칠 일은 아닐 것이다. 정부가 내년도 예산안에서 비무장지대(DMZ) 전력 개선비를 40% 증액했다고 홍보했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DMZ 전력과 직접 관련이 없는 예산들을 모두 끌어 모은 뻥튀기 홍보라는 지적이 나왔다. 새정치민주연합 백군기 의원이 국방위 국정감사 자료에서 지적한 내용이다.

이 내용을 보면 정부가 DMZ 전력개선비라고 발표한 3조28억원 가운데 작전능력 보강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예산은 1천223억 원에 불과하다. 이미 국방중기계획에 반영돼 있던 전력까지 모조리 DMZ 전력 개선비라고 뻥튀기함으로써 DMZ 포격도발로 들끓던 국민여론을 달래기 위해 과장된 홍보를 했다는 것이다.

국방 문제는 정치적 홍보와 무관하게 진행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권의 정치 쇼에 동원되다보니 이런 터무니없는 발표들이 쏟아져 나온다. 국민들 입장에서는 그런 '정치쇼'보다는 자식을 군에 보낸 가족들 입장에서 군인들의 안전 확보에 더 관심을 기울여줄 정치역량을 기대할 텐데 자식 군에 보낸 적 없는 이들이 정책을 주무르는 게 아닌가 의심스럽게 만든다.

최전방 장병들의 생명과 직결된 구형 구급차를 신형으로 교체하는 데 드는 예산 30억원, 북한의 생화학 공격에 대응하기 위한 신형 화생방정찰차 예산 30억원은 전액 삭감되면서 우리의 젊은이들이 너무 소모적 물자 취급을 받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커져가기만 한다.

정치는 어차피 보여주기 위한 쇼의 성격을 지닌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 정부는 정치쇼에 꽤 능숙하다. 청와대가 공격 당할 약점이 드러날 때쯤이면 한 번씩 크게 터트려 관심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는 데도 종종 성공을 거둔다. 야당도 그런 점에서는 박근혜 정부에 배울 바가 크지 않은가 싶다.

그러나 계획적으로 국민을 속이는 것은 쇼가 아니라 사기다. 세월호 사건이 났을 때도 정부는 나중에 세모그룹에서 비용을 환수하기로 하고 우선 피해보상을 정부 예산으로 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비용 환수된 내용은 들려오지 않았다. 처음부터 가능성 희박한 것을 알면서도 국민들은 속고 또 속기를 거듭하지만 스스로 사기 피해자임을 자각조차 못하는 게 보기에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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