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속 신데렐라의 눈물
[기자수첩]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속 신데렐라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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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김태희기자]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를 소개하는 정부의 공식 자료는 흡사 신데렐라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내수경기 회복을 위해 정부는 내달 1일부터 14일까지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라는 파티를 개최한다. 71개 백화점과 398개의 대형마트, 그리고 골목상권 곳곳마다 침투한 2만5400여개의 편의점, 온라인 쇼핑몰들이 자력으로 이 파티에 참여한다.

갑작스런 발표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유통업체들은 각각의 경쟁력을 뽐내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최대 70% 할인이라는 옷을 꺼내 입고 국내 카드사들이 모여 무이자 할부란 멋진 신발까지 신었다.

정부는 소외된 200여개 전통시장 또한 파티에 참가한다고 밝혔다. 중소기업청의 예산 중 10억원을 홍보마케팅 비용으로 지원하고 이를 통해 자발적인 가격인하를 유도한다고 전했다.

신데렐라에게도 멋진 파티에 참여할 것을 당부한 것이다. 다만, 파티에 입고갈 옷이랑 구두는 스스로 해결하라는 방침이다. 마법사가 나타나서 요술을 부리지 않는 한 예쁜 드레스는커녕 신고 갈 유리구두 마저 없다. 상상해보라, 2만6000여개 대형 유통업체들이 참여한 멋진 파티에 낡은 치마와 헤진 신발을 신고 나타난 신데렐라의 모습을.

물류창고도 커다란 냉동고 없이 소자본으로 그날 그날 새벽시장에서 물건을 사와 오늘 하루 장사를 하기 바쁜데 재고상품이 어디 있고, 자발적으로 가격을 낮춰 경쟁한단 말인가?

심지어 정부는 200여개 전통시장에 대한 참여 목록도 없었다. 실제로 서울 중랑구 일대의 시장 3곳과 경기도 의정부, 구리 인근 시장의 상인들은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가 전통시장에도 해당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내달 1일부터 행사가 시작되는데 중기청은 행사 참여를 원하는 전통시장을 취합해 오는 30일 발표한다고 밝혔다.

국내에는 1398개의 전통시장이 있다. 이는 정부의 인증을 받은 시장의 숫자고 실제로는 더 많은 시장이 존재한다. 정부는 이 중 200여개 시장이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한다. 중기청은 각 시장의 상인회에게 500만원씩 지원금을 전달하고 이 지원금으로는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를 알리는 현수막을 만들 예정이다.

또 '떡 만들기' 등의 전통시장 체험행사나 구매금액에 따라 고무장갑이나 항아리 등을 증정하는 경품 행사를 진행할 방침이다. 정부는 이 것이 전통시장을 활성화 시킬 것이라고 말한다. 휴일도 반납한 대형 마트들이 할인 상품을 선보이고 일부 온라인 마트들은 삼겹살, 계란, 생수 등 인기 생필품을 초특가에 판매한다고 대대적인 홍보를 하고 있는 상황인데 말이다.

해외에서 주목받는 경제 활성화 정책이 그대로 국내에 유입됐다. 내수 경기 회복을 위한 정부의 노력은 가상하다. 하지만 경기가 어려워질수록 제일 먼저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은 소상공인들이다. 임시방편으로 급조된 정부의 탁상 정책은 졸라맨 허리를 억죄는 꼴이 될 수 있음을 간과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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