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반올림이 닦아줘야 할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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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박지은기자] 비쩍 마른 남자가 서울행 버스에 오른다. 생업을 내려놓고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반올림)'를 만나기 위해서다. 반도체 생산라인 근무자들이 입는 흰색 방진복을 입고 명동 거리를 걷거나,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생활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삼성전자는 18일부터 반도체와 LCD 생산라인에서 직업병을 얻은 피해자와 사망자, 유가족에게 보상을 위한 접수를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보상 신청을 위한 별도의 홈페이지도 개설해 운영에 돌입했다. 회사는 1000억원의 자금을 보상위원회를 통해 운용하는 방식으로 피해자들에게 직접 보상하겠다고 밝혔다. 조정위 권고안에 명시된 내용대로 1, 2, 3군의 보상 금액도 표로 명시해뒀다.

반올림은 삼성전자의 보상위 운영을 지탄한다. 삼성전자가 내놓는 1000억원 가운데 300억원을 공익법인 운영자금과 보상 외 공익사업 자금으로 사용한다는 권고안의 내용을 회사가 거부하자 비난을 쏟아냈다. 보상위는 삼성전자의 독단적 행동이며 기만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피해 가족들은 언제까지 싸워야 할까? 당장 먹고 살 문제가 막막한 이들이 언제까지 거리에서 목소리를 높여야 할까? 피해가족 A씨는 남편이 병을 앓기 시작한 후 다른 세상에서 살아왔다고 말했다. 보상을 받고 이 상황을 끝내고 싶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생활의 무게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의미다.

애플과 맞서는 대등한 존재, 세계 TV 시장 1등, 세계 스마트폰 시장 1등, 국내 1등 재벌기업 등 삼성전자 앞엔 수많은 별명이 붙는다. 반올림은 그런 삼성과 싸우는 존재였다. 세계 D램 1위인 삼성전자 반도체를 만들다가 직원들이 병에 걸리거나 목숨을 잃었다는 것을 알리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이 문제를 수면 위로 밀어 올리는데 그치지 않고 삼성전자와 협상 테이블까지 연 것은 이들의 공이 분명하다.

삼성의 사회적 책임을 이끌어내겠다는 거대한 미션은 분명 칭찬할만 하다. 하지만 피해자와 피해 가족들이 겪고 있는 생활의 무게를 외면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피해자와 피해 가족들이 그토록 원했던 보상 창구는 드디어 오늘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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