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훼손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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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홍승희기자] 현 문화재청장은 역대 문화재청장 가운데 유독 문화재 훼손에 앞장 서는 인상을 준다. 그게 다가 아니리라고는 생각하면서도 유독 문화재 보존에 반하는 일이 이어지니 그런 인상을 지우기 어렵기 때문이다.

춘천시 중도의 대규모 고인돌 및 동시대 생활 유적지 등 고대 유적지를 현장 보존하지 않아도 문제없다고 해서 파내게 만들더니 이번에는 궁궐을 숙박시설로 활용하겠다고 나서서 여러 사람을 분노케 하고 있다. 그 무엇보다 현장 보존이 필요한 고대의 생활유적지를 파괴하고도 문화재 보호를 하고 있다고 말 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화재 위험이 매우 높은 목조 유물인 궁궐을 숙박시설로 활용하겠다니 그 사고방식이 매우 특이하다.

물론 유럽에서도 몇백년 된 저택들이 숙박시설로 내부 개조되어 활용되기도 한다. 그 경우는 일단 개인소유인데 유지`보수 비용이 너무 많이 드니 보존을 위해 숙박시설로 활용한다지만 궁궐은 일단 모두 국가 소유다. 유지비용 뽑자고 위험을 자초할 대상은 아닌 것이다.

게다가 유럽의 고택들은 그 숫자가 꽤 되지만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옛 궁궐이래야 원형 보존된 곳이 창덕궁뿐이지 않은가. 그만큼 보존을 위해 금 간 사기그릇 다루듯 조심 또 조심해도 모자랄 판에 그 창덕궁에서 궁스테이를 하겠다니 유적`유물을 사랑하는 이들로서는 참 울화통 터질 노릇이다.

근세조선의 궁궐은 서울에만 해도 여럿 있었지만 일제 식민지 시절을 거치며 온전히 제 모습을 보존하지 못했다. 궁궐을 갖가지 명목으로 훼손시킴으로써 일제는 당시 조선민중들의 자존심을 있는 대로 뭉개버린 것이다.

창경궁은 일제에 의해 동`식물원을 둔 창경원으로 개칭되어 공원화했다가 광복되고도 근 40년이 지나서야 겨우 제 이름을 찾고 복원공사를 했었다. 그러니 원형이 유지된 건물을 찾기가 오히려 어려운 지경이다. 게다가 종묘와 한 울타리에 있어야 했지만 이미 궁궐 중간을 잘라내 낸 도로를 없앨 수도 없이 돼버려 결국 반쪽짜리 궁궐 복원으로 그칠 수밖에 없게 됐다.

덕수궁도 대문부터 제 위치에서 밀려났고 선원전을 비롯한 부속 건물들이 다 잘려나가 그 부지가 거의 부유한 여염집 크기로 줄어들어 버렸다. 경희궁도 서울고등학교가 이전해 간 이후 복원공사를 통해 명색만 궁궐유물로 남았다.

조선의 정궁이었던 경복궁 또한 마찬가지 아닌가. 경복궁의 역사야말로 조선궁궐을 숙박시설로 활용해서는 안 될 이유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성계가 조선 건국 후 한양천도를 단행하면서부터 정궁으로 지어진 경복궁은 얼핏 주워들은 기억만으로도 임진왜란 중에 불타고 광해군이 일부 복구했으나 전란직후의 궁핍한 경제상황 때문에 제대로 된 복구를 못하는 바람에 더 이상 정궁으로 기능하지 못하게 됐었다.

그렇게 몇 백 년을 손대지 못했던 경복궁을 다시 정궁의 위치로 복원시킨 이는 흥선대원군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성계 이래 600년 가까이 유지되던 근세조선은 경복궁을 되살린 지 불과 수 십 년 만에 망했다. 흥선대원군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가운데서도 다른 것보다 안타까운 것이 그 시점에서 궁궐 복구가 제일 급했는지 천민자본주의의 물이 든 현대의 소인배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어떻든 그렇게 힘써 복구한 경복궁은 일제가 조선총독부를 바로 그 한 가운데에 청사를 세우며 무수한 전각들을 헐어버림으로써 10%도 안 되는 건축물만 남게 되었다고 한다. 그걸 요근래 다시 복원한다고 법석을 떨었지만 이미 역사 유물로서의 실제 가치는 사라진 셈이다.

그러니 겨우 창덕궁 하나 건질 만한 상황에서 그곳을 숙박시설로 활용하겠다는 발상은 참으로 걱정스럽다. 문화재위원회 사적분과위원회에서도 궁스테이에 대해 ‘보류’ 의견을 냈지만 나선화 문화재청장은 기어코 일을 밀고 나갈 모양이다. 이유는 야간개장 등 활용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관심과 참여가 높아졌기에 더 나아가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서 궁궐에 불이 몇 번이나 났던가 일일이 찾아보지 않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6백년간 꽤 자주 궁궐에 불이 났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목조건물들이기에 화재 위험이 그만큼 큰 것이다. 그런데 굳이 그곳에서 숙박업을 해야 할 만큼 대한민국의 현재 형편이 다급한가. 불나면 복원공사 하면 된다고 여기는 건가. 남대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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