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력이 가장 필요할 때
외교력이 가장 필요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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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동네에서 널뛰기가 벌어지면 늘 작은 아이들은 깍두기라고 해서 널뛰는 선수로 나서지는 못하는 대신 양쪽에서 널을 뛰고 있을 때 널 한가운데 올라앉아 보는 정도의 참여만 허용되곤 했다. 지금 한국의 처지가 그 깍두기처럼 하릴없어 보인다.

북한의 핵실험 이후 대북관계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행보가 부산하지만 대충 예상되던 방향으로 가고 있다.  북한의 대외교역을 압박하는 수준으로 경제제재를 더 강화하되 군사적 행동은 자제한다는 수준에서 일단 마무리는 지을 듯하다.

그런 수준의 결론을 끌어내기 위해 미국과 일본이 한 쪽에 서고 중국과 러시아가 한 쪽에 선 구도에 한국 정부는 여전히 매우 애매한 위치를 점했다. 북한은 심판을 받는 입장이라지만 한국은 그 어느 쪽으로도 기울어져서는 안 되는 입장이다.

우리는 북한 김 정일 체제와 미국 부시 정권 간의 힘겨루기에 당사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관한 제3자도 될 수 없는 처지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싸움을 뜯어말려야 할 형편이다. 그래야 우리가 안전하니까.

어떻든 외교적으로 한국 정부는 참 어려운 입장에 놓여있다. 한반도가 불덩이가 되거나 말거나 미국의 입장을 무조건 따라가자는 이들이야 속 편하게 같은 주장을 반복하면 그 뿐이지만 적어도 국정을 책임진 정부가 그런 황당한 사고를 할 수는 없을 터이다.

외교력을 강력히 뒷받침해도 어려운 그 긴급한 상황에서도 국회는 대통령의 사과가 없어서, 관련 장관이 사퇴하지 않아서 개회할 수 없다며 하루를 허비하는 철부지 모습을 보여줬다.
워낙 자주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다보니 대외적으로 국가원수의 체면이 거름 친 막대기꼴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때가 있는 게 아닌가. 정부 정책에 찬·반 어느 쪽 입장을 갖든 최소한 때를 가릴 줄 아는 것은 그보다 앞선 정치인의 덕목이라고 옛사람들은 늘 강태공의 고사를 들먹이며 가르쳤다.

그렇다고 정치권이 철없는 모습만 보인 건 아니다. 정부가 대북 강경제재의 일환인 PSI에 적극 참여를 요구하는 미국 입장을 고려해 참여 가능성을 검토할 듯한 분위기를 보였을 때 77명 여당 의원들이 즉각적인 반대 의사를 표명한 것은 우리 정치사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신선한 모습이었다.

남북 경협의 존속 여부를 두고 불안한 개성공단을 여당 대표가 전격 방문하기로 한 것도 정치인으로서 시의적절한 선택이었다. 지금 같은 때일수록 남북간 대화 소통의 창구를 유지하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바람직한 행보다.

어떻든 다수 국민들은 어수선한 국내외 상황 속에서도 차분하게 대처했다. 상황에 민감한 주식시장도 하루 만에 안정을 되찾았다. 덕분에 여론을 뒤흔들기 위한 일부의 시도는 무색해졌다. 국민들로서야 정치적 입장이 어떻든 국제관계 속에서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는 국가 수장의 힘을 내부로부터 약화시키는 위태로운 행동을 자제한 것일 터이다.

그런 국민적 힘이 외교력의 배경이 돼야 한다. 정부는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갈수록 중심을 정확히 잡고 국민들이 보내주는 그 신뢰를 믿어야 한다. 운신의 폭이 매우 좁은 이런 시기일수록 외교력이 더 중요하다.

우리에겐 노련한 외교 인력이 부족하다. 근세조선 이래로 늘 어느 나라엔가 기댄다는 의식이 정치·외교 조직에 잠재된 탓인지 여러 이해당사자들 틈에서 중립적 입장으로 조율하고 절충하는 일에 종종 서툰 모습을 보여 왔다.

실상 냉혹한 국제관계 속에서 누군가에게 기댄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아직도 실감하지 못하는 이들, 최근 10년 가까이 조심스럽지만 우리의 독자적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외교가 아직도 낯설고 당혹스러운 이들도 적잖다.

그래도 이제는 혼자 걷고 뛸 수 있다는 믿음을 길러야 한다. 우방이란 친구이지 보호자가 될 수는 없다. 친구는 서로 경쟁하며 함께 성장할 때 더 깊은 우정과 신뢰가 생긴다.

홍승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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