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세계사를 바꿀 새로운 흐름
난민, 세계사를 바꿀 새로운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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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홍승희기자] 경기불황 속에 줄을 잇는 서아시아지역 난민들로 골머리를 앓던 유럽 여러 나라는 물론 미국까지 세 살 아기 쿠르디의 시신 사진 한 장에 굴복했다. 난민 수용을 늘리기로 한 것이다.

현재 유럽을 이끌고 있는 독일 한나라만 봐도 올해 80만 명이나 되는 대규모 난민이 망명을 신청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고 한다. 이런 피난행렬은 지금까지 대체로 국경이 틀 안에서 안주하던 시대에 균열을 가할 만한 새로운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인류의 역사에 몇 번인가의 강렬한 변화들은 반드시 인류의 대규모 이동과 궤를 같이 했다. 기후변화 때문이든 지각변동 때문이든 또는 다른 그 무슨 원인이 되었든.

그런 점에서 어쩌면 지금의 대규모 난민사태는 국경을 허물고 민족주의의 장벽을 허무는 또 다른 인류사회의 큰 변혁의 징조일 수도 있다. 난민들이 몰려드는 나라들로서는 경기불황 속에 자국민들의 삶의 질을 유지하기에도 급급한 데 긴급 구호가 필요한 난민들까지 몰려드는 일이 반가울 수는 없겠지만 지금의 사태는 유럽의 앞선 세대가 그 씨의 뿌린 것이기도 하다.

20세기부터 시작된 서구 열강의 중동지역 침탈에서 시작돼 산업화의 핵심동력이 됐던 석유자원의 풍부한 매장량이 그야말로 선진 산업국들의 먹기 좋은 떡이 되는 순간 중동지역의 피바람은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고 봐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2차 대전 이후 거의 대부분의 중동 지역은 서구 열강의 땅따먹기에서는 벗어났지만 산업화에 뒤늦게 눈뜨고 보니 이미 자국 내 석유자원은 서구의 거대자본들에 의해 선점된 상황. 그런 선진 산업국들의 자본을 앞세운 새로운 형태의 침탈에 저항세력이 자라나는 것은 어느 면에서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미 출발이 한참 뒤처져버린 중동 지역에서는 자본의 침탈 방식에 같은 카드로 맞서는 대신 자본과 함께 침투하는 종교, 사상과 맞섬으로써 자국 내의 동요를 줄이는 방식을 선택했다. 당시 미국 아니면 소련 어느 편엔가 줄서기 해서 권력을 쟁취하고 유지하던 패턴을 깨고 미국의 지원을 받던 이란의 팔레비 왕조와 맞서 이뤄낸 혁명이 바로 회교혁명 혹은 호메이니혁명이라고 불리는 이슬람 원리주의 혁명이었다.

그리고 그 영향은 이후 과격한 무장 세력들에게 더 할 수 없는 좋은 명분을 제공했다. 중동지역은 이슬람 원리주의를 기치로 내건 무장 세력들로 인해 끊임없는 내전 상황에 빠져들고 교리를 빌미로 사회활동에서 배제되었던 여성은 물론 청소년들까지 이슬람 전사라는 미명 아래 자살폭탄의 희생자로 내몰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 그 전란의 땅에서 생존을 위해 목숨을 걸고 탈출해야만 하는 모순된 상황에 직면한 숱한 난민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들이 상대적으로 찾아들기 쉬운 유럽을 향해 때로는 무모해보일 정도의 피난행렬을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런 난민 문제에서 한발 비껴선 듯이 보인다. 그러나 당장 무력충돌 활성지대는 없어 보이지만 동아시아도 결코 조용하지만은 않다. 현재는 중국 땅이 된 위그르와 티베트의 분리독립운동은 불씨가 쉬이 꺼질 기미가 없다. 게다가 우리는 빈곤 등 여러 이유로 북한을 탈출하는 같은 민족 구성원들이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통상 난민이라 하면 무력충돌로 인해 직접적인 생명의 위협을 받고 이를 피해 도망친 이들을 지칭하지만 실상 세계적인 경제전쟁의 피해 약소국에서 굶주림을 강요당하다 살길을 도모하기 위해 자국을 벗어나는 이들 역시 난민으로 보아야 한다. 무력전쟁으로 인한 난민 못지않게 경제전쟁으로 인해 생겨나는 난민 문제도 심각하게 바라봐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지금 북방 아시아나 동남아 등지에서 한국 땅으로 들어오는 수많은 노동자와 그 가족들 중에도 사실상의 난민들이 예상 외로 많다. 이들 경제난민들의 자녀들 중 한국 땅에서 태어난 많은 아이들이 부모가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로 출생신고조차 안 된 채 교육, 의료 등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고 한다. 한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그 숫자가 2만 명에 이른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이제 우리도 난민문제를 이 시대의 현안으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더불어 사는 방식을 고민할 때가 됐다. 이미 국제결혼도 흔한 일이 된 마당에 배타적 민족주의 따위가 발붙일 공간은 없지 않은가. 품 안에 들어오는 모두를 끌어안고 갈 철학이 없고서는 우리가 늘 작은 나라, 분열하는 민족으로 머물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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