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쿠팡 오픈마켓 진출의 모순
[기자수첩] 쿠팡 오픈마켓 진출의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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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김태희기자] "이젠 뭘 팔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엎친데 덮친 격, 산 넘어 산이다. 온라인 유통업계에서 10년 이상 종사해온 A씨는 지난해 말 쿠팡과의 거래를 중단하고 오픈마켓 채널에 매진하고 있다. 쿠팡이 유아용품과 식품 등을 중심으로 물건을 직접 매입해 판매하는 로켓배송 서비스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로켓배송의 주력 브랜드인 '하기스'나 '다우니'를 쿠팡에서 검색해 보면 일반 판매자가 올려놓은 상품은 찾아보기 힘들다. 모두 쿠팡이 직접 판매하는 '로켓배송'으로 물갈이 된 것이다.

쿠팡 입장에서는 고객 만족도가 높은 로켓배송에 주력하다 보니 소상공인들이 설 자리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쿠팡은 오픈마켓 형태인 '마켓플레이스'를 내달 중 운영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쿠팡 측은 소비자에겐 다양한 선택권을, 중소상공인들에게는 유통채널 확대 기회라며 운영 취지를 밝혔다.

또 오픈마켓으로 사업을 전환하는 것이 아닌 기존 서비스에 추가하는 것 뿐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업계는 하나의 회사에 큐레이션과 리테일, 오픈마켓이 공존하는 최초의 사례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일단 쿠팡이 제시한 취지는 표면적으로는 꽤 그럴싸해 보인다. 소비자들 입장에서도 기대치도 높아졌다. 하지만 반대로 중소상공인들의 입장에서는 혼란이 생긴다. 하나의 회사에 3개의 유통채널이 존재하다보니 동일품목들의 가격경쟁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판매 채널 3개중 1개는 모회사가 직접 운영하는 로켓배송으로, 쿠팡은 이 사업확대에 거액을 쏟아부으며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사업이라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소상공인과 쿠팡의 가격경쟁이 가능할까?

설령 동일품목에 대해 유사한 가격이 책정된다고 하더라도 소비자들은 이왕이면 해당 기업이 책임지고 보상해주는 안전한 채널을 선택할 것이다.

더불어 오픈마켓의 경우 판매자간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입점 수수료 외에도 광고비, 배너비 등의 홍보비용이 추가로 발생하는 채널이다. 이는 기존의 오픈마켓 4사에서도 드러난 불공정거래 행태 중 하나다.

쿠팡의 오픈마켓 진출로 소상공인들은 쿠팡이 '손수 만든 링' 위에 쿠팡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소상공인들에게 판매채널 확대라는 열매를 가져다줄지, 아니면 또다른 형태의 불공정거래의 씨앗을 잉태할지 보다 진지한 고민과 해법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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