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애국마케팅, 그 씁쓸한 뒷맛
[기자칼럼] 애국마케팅, 그 씁쓸한 뒷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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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공인호기자] 자살 증가율 및 저출산 OECD 1위, 1인당 노동시간 OECD 최대, 노인 빈곤율 OECD 평균의 4배, 구직 포기하는 니트족(NEET) 비중 OECD 3위...

2015년 대한민국의 현 주소는 우울하다 못해 암울하기까지 하다. 지난 2013년 국내외 여론조사기관의 '삶의 질' 합동 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90% 가까이가 "살기 힘들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2년간 경제 사회적 여건이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수치는 더욱 늘었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현 정부 출범 이후 우리 국민의 사회·경제적 피로감은 더욱 커졌다. 정권 초기에 발생한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지역·세대·이념갈등을 수면위로 끌어올리며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지불했다.

또 지난 18대 대선 과정에서 불거진 국가기관의 '일탈행위'는 최근 국정원 불법도청 논란으로까지 번지며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있다. 급기야 국민 10명 중 7명이 '정부를 신뢰하지 않는다'라고 답했다는 OECD 여론조사 결과까지 나왔다.

지금은 한풀 꺾였지만 온 나라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메르스 사태'는 올 상반기 내내 민간 경제를 마비시켰고, 그 여파는 올 하반기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불안감이 여전하다. 여기에 올 하반기 본격화될 것으로 보이는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은 노사정 갈등의 기폭제가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런 와중에 때아닌 '애국 마케팅'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정부는 '국민들의 사기진작' 차원에서 8월14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했다. 때마침 광복을 소재로 한 영화가 등장하는가 하면 얼마 전에는 연평해전을 다룬 영화가 개봉돼 정치권 안팎으로 진흙탕 이념논쟁을 낳기도 했다.

재계도 예외는 아니다. 계열사인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두고 미국계 사모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와 지루한 공방전을 이어갔던 삼성은 한달간의 혈투 끝에 결국 승기를 잡았다. 이 과정에서 삼성은 '해외투기자본 vs 토종기업'이라는 대결구도를 만들며 합병의 키를 쥔 국민연금과 소액주주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자신의 재산을 지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호소했던 엘리엇은 결국 비판 일색의 여론과 소액주주들의 외면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반(反)재벌 정서를 노렸던 엘리엇 측으로서는 국민정서 저변에 깔린 애국주의의 벽을 넘지 못한 셈이 됐다.

여기에 최근 재계 5위 롯데그룹이 펼치는 애국 마케팅 행보는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제2롯데월드'에 대형 태극기를 테이핑하더니, 정부의 노동개혁 발표에 맞춰 대규모 신규채용 계획을 들고 나와 대대적 홍보에 나섰다.

하지만 이는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의 장·차남의 '형제의 난'으로 롯데그룹의 불투명한 지배구조가 도마위에 오르는 등 스스로가 드러낸 치부를 최대한 가려보려는 방편으로 비쳐지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한국 롯데의 신동빈 회장이 "매출의 90%가 한국에서 일어난다"며 "롯데는 한국기업"이라고 못박기는 했지만, 수천억원대 배당이 일본으로 흘러들어간 정황이 포착되는 등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롯데의 적극적인 애국 마케팅에도 불구하고 '형제의 난' 여파가 생각보다 오랜기간 지속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국적문제에 볼썽사나운 경영권 다툼, 그리고 정부의 각종 특혜와 '국민 기업' 이미지를 통해 유통 1위 공룡기업으로 성장해왔다는 결코 간단치 않은 이유들이 얽혀있기 때문이다.

당장 대규모 채용 계획 발표와 대형 태극기를 동원한 롯데의 호소가 얼마나 먹혀들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정치권이든 재벌 총수든 아쉬울 때 뿐인 애국 마케팅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속내는 '미워도 다시한번',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터다.

각종 불법과 편법으로 국민들의 공분들을 사온 재벌 총수들이 머리숙여 약속했던 기부와 투자가 온전히 지켜진 적이 얼마나 있었던가. 같은 맥락에서 진정성이 결여됐거나 의심받는 '애국적 행위'는 국민정서에 혼돈만 줄 뿐이다. 더 나아가 약이되기보다 독이될까 우려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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