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포세대의 주범은 부모세대 노동자?
3포세대의 주범은 부모세대 노동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파이낸스 홍승희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6일, 취임 후 네 번째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재도약을 위해 경제 대수술이 불가피하다고 했지만 핵심은 ‘노동 개혁’이 핵심이다. 금융시스템 개혁, 서비스산업 육성, 교육 개혁 등을 덤으로 얹었으나 내용은 모호하기 그지없다.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토대이자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적인 열쇠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지적에는 많은 국민들이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청년실업률이 10%를 넘어서면서 3포 세대라는 신조어가 일상화할 정도로 미래가 깜깜한 젊은이들의 일자리 창출이 긴요한 때인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그 해법으로 내놓은 것이 노동개혁이어서 그 해법에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동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며칠 전부터 공중파며 종편 방송들까지 청년 일자리문제를 새삼 합창하기 시작하더니 그 연장선상에서 나온 대통령의 해법이 강력하게 노동개혁을 추진해가겠다는 것이다. 노동개혁이 곧 일자리라고 한다. 노동개혁 없이는 청년들의 절망도,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고통도 해결할 수 없다고 한다.

고통을 분담하자는 대통령의 요구에는 그 원칙에 반대하기 어려운 게 현 상황이다. 하지만 문제는 왜 그 고통분담을 노동자들끼리만 해야 하느냐는 반발이 나오는 게 자연스러워 보인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 재화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재벌들의 분담은 없고 오로지 노동자들끼리 떡 좀 떼어주라는 얘긴데 이건 가족 단위로 보자면 더 많은 가족이 나가서 더 많이 일하고 똑같은 수입만 얻으라는 소리처럼 들린다.

부모세대 노동자들이 임금피크제 아래서 더 오래 노동하고 그렇게 아낀 비용으로 젊은이들을 고용하라는 것인데 지금 재벌기업들은 기업에 투자할 의지도 없고, 손쉽게 기업을 물려받은 2, 3세들에게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며 기업을 성장시키려는 기업가 정신 따위도 없다. 다만 물려받는 재력을 권력화 하는 일에만 몰두할 뿐.

그들은 중세시대의 귀족들이 평민이나 농노들을 보듯 노동자들을 보며 계급적 격차를 태생적으로 당연한 것, 그야말로 다른 DNA를 가진 존재쯤으로 여기는 행태를 그동안 여러 차례 보여주지 않았는가. 어려서부터 저들끼리만 어울려왔고 상속받기 위한 권력투쟁에 익숙하게 성장해온 그들로서는 그게 문제가 될 일이라는 생각을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 아니 공화당부터 새누리당까지 이어진 역대 보수 정당의 정부는 재벌을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처럼 다룬다. 경제개발 초기에는 각종 특혜를 몰아주며 말 잘 듣는 사냥개로 길들이고자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런 넘치는 특혜 속에서 커온 재벌들이 이제 종신 총통도 아닌 대통령의 힘쯤에 굴복할 단계를 넘어선 지는 오래됐다.

지금 롯데그룹이 벌이는 경영권전쟁도 뒤집어보면 재벌들 눈에는 정권도, 국민도 하찮아 보인다는 진정한 속생각이 읽힌다. 오죽이나 우습게 보였겠는가. 돈 벌어 배당금으로 수익의 거의 대부분을 일본으로 가져가 버려도 한국 5대 재벌그룹으로 키워주며 각종 특혜로 도배를 해주는 데 한국과 한국인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이게 롯데그룹만의 문제인가. 물론 롯데는 일본기업을 모태로 커왔고 지금도 배당금의 95%가 일본으로 갈만큼 일본 기업의 지배력이 크다는 점에서 국내 다른 재벌그룹들과는 차이가 있지만 재벌기업이 정부와 국민을 보는 시각 자체가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다.

물론 필요에 따라 겉으로야 약한 체도 하고 굴신도 하지만 그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상인들의 일반적 행태 아닌가. 그나마 앞으로 2, 3세 경영이 늘면서 귀족으로 큰 그들이 부모 혹은 조부모 세대처럼 굴신이나마 할지도 모르겠다.

지금 정부의 재벌 대하는 태도는 그들의 사보타지를 두려워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한국 경제에서 재벌들 비중은 비정상적으로 크니 그럴 법도 하다.

하지만 특혜로 쌓아올린 덩치만 클 뿐 철학이 빈곤한 한국의 재벌들의 행태를 보면 마치 어려움 모르고 자란 부자집 망나니 아들들 같다.

옛사람들은 귀한 자식일수록 엄하게 키워야 한다고 했다. 부모재산 물려받는 걸 당연히 여기는 부잣집 장남처럼 떠받들어 키워놓으니 받는 것만 자연스럽고 나누거나 베풀 줄은 모른다. 그런데 정부는 그렇게 큰 재벌들을 보호할 줄만 알고 또다시 노동자들에게 부모, 자식 돌아가며 너희끼리 나눠먹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번 대통령 담화가 그런 인식을 압축해 보여준다.


이 시간 주요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