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 기술 좀 배우자
싸움 기술 좀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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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외교통상부를 보고 있자면 맨 날 얻어맞고만 들어오는 자식 바라보는 부모 심정이 되곤 한다. 때로 상대는 종주먹 거머쥐고 덤비는 데 조목조목 이치를 따지려 들다 코피 터지는, 천상이 책상물림들처럼도 보인다. 그런가하면 요즘처럼 주변국들과의 영토분쟁 징후가 일 때는 제 집안 내력도 제대로 몰라 주변으로부터 무시당하는 얼뜨기 선비 꼴로 비치기도 한다.
 
외교통상부뿐만이 아니다. 나라 안 구석구석에서 허구한 날 큰소리들은 나는 데 제대로 매듭지어지는 싸움은 드물다. 그래서 역사적 정리도 제대로 안되고 날선 판단을 내려야 할 때조차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해결을 마냥 미루기만 한다.

그러다보니 문제제기한 쪽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악을 써대지만 도무지 진전이 없고 모두가 늪 속으로 빠져드는 것만 같다. 이 쯤 되면 어떤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고 내 목청만 돋구는 단계에 이르고 말로만 싸우는 단계를 넘어 육탄전이라도 벌이자고 나서는 데 그마저도 도무지 전략도 없고 작전도 없다. 시간이 가면 애초에 무엇 때문에 싸우기 시작했는지도 희미해진 채 큰소리만 떠돈다.

외교고 통상이고 간에 또는 정쟁이고 노동쟁의고 간에 그 모든 게 기본적으로는 사람을 설득하고 휘어잡는 능력과 논리의 함정을 피하는 예리함과 순발력의 크기로 결판나는 치열한 싸움판이다. 그보다 근본적으로는 상대보다 유리한 자신만의 무기를 알고 활용할 줄 아는 능력과 자신감이 무엇보다 앞서는 승리의 조건이 될 터이다.

헌데 우리는 대체 제대로 싸울 줄 모르는 사람들, 싸움의 가치를 무시하는 사회인 것만 같다. 무조건 싸움은 나쁜 것이라고만 가르치는 교육도 재고해 봐야 하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자기 생존을 위한 싸움을 숙명으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사람이라고 예외일리는 없다.

그렇다고 폭력적 사회를 지향하자는 말은 결코 아니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해야겠지만 피할 수 없는 싸움을 피하려 들면 결과는 참담한 굴욕뿐이다.

인간은 다른 동·식물과 달리 공정한 겨루기를 위해 싸움에 나름대로 규칙이라는 걸 정해 웬만하면 그 룰을 지켜나가고자 한다. 현대전에도 제네바협약이 있어 전쟁 포로에게는 일정한 대우를 하고 핵전이나 세균전 발생을 막기 위해 무기 사용에 제약을 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도 언제나 지켜질 수는 없다. 여전히 전쟁은 강자가 만들어내는 명분만으로 일어나고 당하는 입장에서는 그 전쟁을 피할 수도 없고 논리와 이성으로 극복할 수도 없다. 세상에 힘 있는 자가 원하는 데 명분 없어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는 경우는 없다.

따라서 불가피한 싸움이라면 그게 외교나 통상과 같은 평화적 쟁투가 됐든 물리적 전쟁이 됐든 이기는 법을 알고 있어야 한다. 물론 일단은 힘센 쪽이 유리하다. 그러나 무조건 힘만 갖고 이긴다면 세상에 협상은 존재하지 않고 다양한 민족, 국가 따위도 존재할 수 없겠다.

어찌 되었든 요즘 증권가에도 새로운 싸움이 시작된 모양이다. 요즘 사회 전반적으로 부는 보수 회귀 바람에 내년 대통령선거까지 앞둔 정치적 분위기를 반영하듯 그간 진보진영의 독점적 영향하에 있던 여러 사회 영역에 보수단체들의 영향력이 빠르게 확산되고 갈등이 고조돼 가고 있다. 그런 경향은 정치판보다 분위기 조성에 유리한 각종 사회, 노동단체 등에 먼저 나타난다.

그런 가운데 증권산업노조 단일 조직으로 유지돼온 증권가에 두 달 전쯤 전국민주금융노조가 떠오르더니 현대증권을 중심으로 영향력 확장을 위한 강경투쟁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 첫 대상이 된 서울증권의 조직원들은 당장의 현안으로 M&A 과정에서 본인들의 복지문제가 걸려있는 데 정치 사회적 이슈만 들먹이니 답답해한다는 전언이다.

누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싸울지, 또 어느 지점에서 후퇴할지 결정권을 쥐고 제대로 행사하는 사람이 결국 승리자가 될 터이다. 그 사람이 진정 싸우는 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홍승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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