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유구무언' 산업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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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정초원기자] "KDB산업은행이 그동안 대우조선해양의 부실을 정말 몰랐는지도 의문이지만, 진짜 몰랐다면 관리 부실에 대한 책임을 져야죠."

대우조선해양의 대규모 부실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채권은행들 사이에서는 당황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수치상으로 별다른 문제없이 흑자를 내왔던 회사가 사실은 조(兆) 단위 부실을 숨겨왔다는 데서 오는 충격이다. 주채권은행이자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이 부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쓴소리도 잇따른다.

채권은행들의 반응을 감지한 산업은행은 곧바로 "워크아웃이나 자율협약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일축했지만 은행들로서는 후폭풍에 대한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일단 지금 시점에서는 유상증자를 추진하는 쪽에 무게가 실리지만, 이미 부실이 드러난 만큼 개별 은행들도 충당금 문제를 고려할 수밖에 없게 됐다.

특히 이번 사안은 그동안 불거졌던 기업 부실 케이스와는 달리 분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산업은행이 주채권은행일뿐만 아니라 30%가 넘는 지분을 보유한 대주주인 탓이다. 산업은행으로서는 다소 억울할 수 있겠지만, 일각에서는 '산업은행이 정말 몰랐겠느냐'라는 의문까지 나오고 있다. 자행 출신 최고재무책임자(CFO)까지 앉혀놓은 상황에서 조단위 부실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납득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산업은행도 대우조선해양의 부실을 어느정도는 예견한 것으로 보인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이 연달아 부실을 내는 상황에서 유독 대우조선해양만 흑자를 내는 상황이 다소 기형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정성립 현 사장이 취임하기 전인 지난해 부실 여부를 여러번에 걸쳐 물은 바 있지만, "문제 없다"는 답변만 받았다고 한다. 문제가 없다는 답변이 왔는데도 비금융회사의 자율경영을 침해할 수 없어, 그 이상 개입하기는 어려웠다는 게 산업은행 측의 해명이다.

결과적으로 산업은행을 둘러싼 책임론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간 산업은행은 STX그룹, 동부그룹 등 대규모 부실기업의 구조조정을 주도하는 과정에서 수차례 책임론에 치여 왔지만, 일정 부분 '정상참작' 된 측면도 있었다. 녹록찮은 시장 상황에 맞춰 국책은행으로서의 균형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공감대가 어느정도는 형성됐기 때문이다. 상황논리를 무시하고 산업은행에만 책임을 지우기에는 가혹하다는 시각인 셈이다.

하지만 이번 대우조선해양 건의 경우 '선제적으로 파악하지 않으면 안됐을 상황'이라는 쪽으로 무게추가 기운다. 더욱이 이번 부실은 그간 산업은행이 시기와 방법을 조율해 온 대우조선해양 매각 계획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막다른 길에 갇힌 산업은행의 다음 행보에 금융권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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